

어느 날 아침 신문에 촌철살인이라는 표현으로도 모자랄 시가 한 편 실려 있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사파르디 조코 다모노
자신을 재로 태워버릴 불에게 나무가
사랑한다는 말 한 마디 전할 새가 없는 것처럼
나도 그렇게 널 사랑하고 싶다
자신을 물방울로 사라져 버리게 하는 비에게 구름이
사랑한다는 표현 한 번 할 새가 없는 것처럼
나도 그렇게 널 사랑하고 싶다.
강은교씨는 해설에서
사랑은 세계 어디서나 급박하고 절망스럽다고 말했습니다.
이 시인은 인도네시아 사람입니다.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여행 중에 건너간 작은 섬에서 인도네시아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전혀 급박하지 않은, 한없이 느리고 나태한 민족이라 들었습니다. 그 곳에 진출한 한국의 기업들이 그들의 게으름에 가슴이 터질 지경이라 해요. 폭염의 더위가 그들에게 천천히 쉬면서 움직이도록 가르쳤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인은 사랑의 그 절절함, 죽음도 불사할 열망을, 불과 나무, 구름과 비로 은유하여 기막히게 표현해 내는 군요. 자신이 소멸되어도 괜찮다는 그 처절함에 소름이 끼쳤습니다. 진실로 그런 절실함이 사랑 속에는 있습니다. 단 한 번의 사랑으로 죽어도 좋겠다는 감정을 절절히 품는 사랑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어느 시인은 ‘자기를 찍어 넘기는 도끼날에 향을 듬뿍 묻혀주는 향나무처럼 그렇게 사랑할 수는 없노라’고 절규하기도 했어요. 자기를 찍는 도끼 날 같은 아픈 사랑을 체험했을 것입니다. 찍는 도끼날에 향을 묻히는 사랑이란 도대체 인간으로서 가능 할지요.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에게 그 극한 고통을 견디며‘저들이 하는 짓을 모르오니 용서하소서.’ 했던 성자의 찬란한 경지를 누가 넘볼 수나 있겠습니까.
한참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파리의 연인」에서 나를 깊이 흔든 것은 젊은 연인들의 사연이 아니었습니다. 권력과 부귀의 기회를 포기하고 여인의 사랑을 택하던 최 이사의 모습이었어요. 60을 바라볼 때 까지 야망의 외길을 달려온 그가 한 여인의 사랑을 얻기 위해 인생의 목적을 바꾸는 장면은 가슴에 물살을 일으켰습니다.
사랑은 사람을 승화시키는 힘으로 하여 희망이 되는구나. 깨달았어요. 승화 될 수 없는 사랑은 없을 것입니다. 애고를 넘어선 사랑의 빛에 쏘일 때 홀연히 길이 열리고 바로 그 순간 사랑이 육체를 벗어나 영혼을 품을 수 있습니다. 그 과정을 거쳐 비로소 사랑은, 빛과 에너지로 가득 찬 세계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소유가 아니라 발화인 것입니다.
‘사랑이 내게 있는 동안 까만 씨앗이었지만 네게로 건너가서 꽃이 되고 향기가 되었다’고. 노래한 시를 아시지요. 사랑은 자기를 떠난 씨앗이 건너가 그에게서 꽃이 되고 향기가 되는 기적의 작업이지요. 사랑의 발현이란 황홀한 꽃입니다.
하지만 그에게 건너가 꽃이 될 수 없는 사랑도 수 없이 많아요. 건너가지 못해도 스스로 꽃이 되는 사랑도 있습니다. 놓여 진 상황의 한계를 극복하는 일은 물리적인 현상이 아닌 까닭입니다.
인생이란 사랑의 승화를 이루어 내야하는 험난한 여정일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