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론도 만만치 않다. 사회를 지나치게 경직화시키고 단속이 쉬운 약자들을 대상으로 한 단순범죄에 초점이 맞춰져 형평성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거대한 부패, 제도적 차원의 문제를 가리는 역효과도 큰 문제로 지적된다.
관용으로 알려진 톨러런스(똘레랑스, tolerance)가 ‘참고 견딘다’는 라틴어 tolerare에서 유래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개념은 고대 로마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패하면 노예가 되는 것이 일반적이던 고대에, 로마는 굴복시킨 적에게 시민권과 원로원 의석을 주었다. 그들의 신, 언어, 자치권도 폭넓게 인정했다. 『영웅전』의 저자 플루타코스는 '패자조차 자신들과 동화시키는‘ 관용과 개방성이야 말로 로마를 융성케 한 원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로마가 불관용으로 일관한 세 가지 대상이 있다.
첫째는 불관용 그 자체이다. 관용을 거부하는 불관용을 인정하지 않았다. 로마는 다른 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던 유대인들을 자신들의 땅에서 내쫒았다. 이천여년에 걸친 이산(離散, diaspora)의 시작이다. 관용이란 남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을 토대로 한다. 남을 인정한다는 것은 객관적인 시각의 출발이다.
둘째, 배신을 용납하지 않았다. 로마는 한니발 전쟁 이후 조약을 어기고 다시 전쟁을 일으킨 카르타고를 함락해 도시의 모든 것을 태우고 땅위에 소금을 뿌렸다. 배신의 씨앗 하나 남겨두지 않겠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로마가 관용을 적용하지 않은 대상은 바로 로마 자신이었다. 로마는 승리자인 로마시민에게 속주민보다 더 큰 책임을 부가했다. 속주민은 소득의 10분의 1을 세금으로 내고 전쟁에 나가지 않을 수 있었지만 로마시민은 직접 전쟁에 참가해야 했다. ‘더 많은 권리에, 더 많은 책임’의 원칙을 지킨 것이다.
제로 톨런런스 정책의 성공 관건은 불관용을 누구를 상대로 어떻게 적용하느냐이다. 청렴도가 국가 경쟁력이라는 인식이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현재,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객관적 원칙을 토대로, 부패와 비리 같은 신뢰를 져버리는 행위에 대해, 그리고 무엇보다 더 큰 권한을 가진 대상에게 더욱 엄격했던 로마에게서 불관용의 지혜를 배울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