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사회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늙어가고 있다. 사람이 늙으면 누구나 노인되는 것이 당연한데 이것이 현대사회에 와서는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실제로 먹고살기 힘들어 도저히 노부모를 부양할 수 없는 사람들이 어쩔수 없이 ‘패륜’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으며, 노부모의 오랜 병수발로 평범한 가정이 붕괴되기도 한다. 근래에는 중산층의 가정에도 더 이상 노부모를 모시기가 힘들다고 울상을 직고 있다.
이처럼 여러 노인문제 가운데 노인부양은 이제 더 이상 한 개인이나 가족의 문제가 아니고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어 있다.
현대사회에서 가족단위의 노인부양이 이루어지기 힘든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는 여성의 역할과 지위의 변화에서 비롯된다. 전통적으로 노부모 부양은 장남이 책임져왔지만 그 내면을 살펴보면 실제로 노인부양의 주체는 장남이 아니라 그의 아내였다.
노인은 언제나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 부양해 왔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교육수준이 높아지면서 여성은 더 이상 가정에만 머무르지 않고 자기 할 일을 찾아 사회로 진출하고 있다. 여성의 인식과 사회적 지위가 급속히 변하는 현대사회에서 여성이 가정에 남아 노인부모 모시기를 기대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그리고 노인부양에 관한 가치관에 세대간 차이도 크다. 지금의 노인들은 일제 식민지 통치와 전쟁 속에서 고통스러운 유년기를 보내야 했고, 젊은 시절에는 산업화의 역군으로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부모를 부양했고 자식들을 길러왔다. 노년기에 접어든 이들은 자식들이 자신을 부양하기를 당연히 기대한다. 그러나 노인세대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빈곤에서 벗어나 물질적 풍요를 맞보며 살아온 자식세대들은 자기들이 노인부모를 전적으로 부양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젊은 세대로 내려갈수록 부모는 부모대로, 자식은 자식대로 각자 자신들의 삶은 영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가치관이 팽배하고 있다.
이처럼 세대간에 노인부양에 관한 기대의 불일치가 심해지면서 가족에 대한 노인부양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노인이 된다. 따라서 아무도 노인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래서 노인복지는 우리 모두의 문제다.
그러나 경제논리가 지배하는 현대사회 속에서 노인을 부양하는데 드는 사회적 비용 때문에 부담의 대상으로만 간주하여 노령화나 노년에 대한 우리사회의 지배적인 관념은 대체적으로 부정적이다. 노령화를 단지 육체적·정신적 쇠퇴현상으로만 인식하고 질병·궁핍·의존·죽음 등으로 연상하는 것이다 텔레비전에 가끔씩 비치는 노인의 모습은 허름한 옷차림으로 공원 의자에 앉아 무표정한 표정을 직고 있거나, 무료급식을 받기위하여 길게 줄을 서 있는 모습들이다. 이런 모습을 배경으로 노인에 대한 매스컴의 보도는 언제나 부정적인 면만을 부곽시켜 노인문제는 사회적으로 시급히 처리해할 사안이라는 뉘앙스를 담고 있다.
이처럼 늙음에 대한 부정적인 관념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고 경쟁과 효율성을 추구하는 추세에 따라 더욱 강화되고 정형화되는 양상은 심각하다. 그에 따라 늙음은 두려움과 혐오, 기피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고령화 사회 그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그에 대한 대책이 부적절하다는 것이 더 심각한 문제임을 인식하여야 한다. 그러한 인식의 바탕에서 노인문제를 결코 노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구성원의 이해관계가 걸린 사안이며 국가적 과제임을 명심해야 한다.
이처럼 예전에는 병든 노부모나 버려진 노인의 문제를 ‘효’라는 관점에서 다루어 왔다. 그러나 우리사회의 가족부양체계는 이미 각 가정에서 무너져 가고 있는 상태이다. 따라서 우리사회가 언제까지나 ‘효’라는 전통윤리로만 고령사회를 해결할 수는 없다. ‘효’의 개념이 바뀌어야 한다. 앞으로 등장할 장수사회가 진정 축하의 대상이 되려면 전통적인 ‘효’를 대체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사회전체가 지혜를 짜내 고령화시대에 대비하여야 한다.
이 광 래 <제주관광대 사회복지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