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마다 음력 팔월 초하루가 다가오면 벌초(伐草)를 준비한다. 들로 산으로 흩어져 있는 조상님 산소를 찾아 자손들은 의무감 때문인지, 이때만큼은 모든 일 제쳐두고 조상님 산소를 깨끗이 정리한 후 추석을 맞는다. 특히, 우리고장은 섬지역이라 그런지 묘지가 많다. 조상님을 극진히 모시려는 제주 사람들 마음 때문일까. 경치가 좋은 중산간 임야지대는 물론 목장과 농경지 안에도 제주 돌담으로 둘러져 있는 묘지를 쉽게 볼 수 있다.
문제는 이 묘지들이 지적도(地籍圖)에 적법하게 등록된 묘지도 있지만, 일부는 등록이 안돼 타인 토지 속에 속함으로 인한 소유권 분쟁이 종종 발생한다는 것이다. 제주의 중산간지역 대부분 토지가 외지인 소유로 소유권이 바뀐 상태에서, 새로운 땅주인은 지상에 등록 안 된 묘지에 대하여 토지세를 납부하고, 개발 등 각종 재산권행사에 지장이 있다는 이유를 들어 묘지 철거를 요구한다.
이때, 묘주가 대항 할 수 있는 것이 분묘기지권이다. 아무리 타인 소유 토지에 소유자 승낙 없이 분묘를 설치한 경우라도 20년간 평온.공연하게 그 분묘의 기지를 점유하면 분묘기지권을 시효로 취득한다. 이러한 분묘기지권은 봉분(가묘제외) 등 외부에서 분묘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는 형태를 갖추고 있는 경우에 한하여 인정되고, 평장되어 있거나 암장되어 있는 경우에는 인정되지 않는다.
분묘기지권은 현재 분묘가 있고 비석, 항공사진 등에 의하여 오래전부터 분묘를 수호하고 있다는 증거가 있어야 하고, 분묘가 존속하고 있는 기간에만 권리가 성립된다. 분묘기지권은 일종의 지상권처럼 관습적으로 인정되는 것으로 토지주가 지료를 청구할 수도 없으며, 토지주가 분묘이장청구소송을 해도 승소가 희박하다. 때문에 아무리 토지소유자라 하더라도 남의 묘지를 함부로 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분묘기지권은 2001년1월13일 이전에 설치된 분묘에 대해서는 계속 인정이 되지만, 그 이후 설치된 분묘는 장사등에관한법률에 의거 여러 가지 제한을 둠으로써 관습법상의 분묘기지권은 더 이상 인정되기가 어려워졌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