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에 있는 형님 드릴 선물도 사놨는데···”
“북에 있는 형님 드릴 선물도 사놨는데···”
  • 김동은 기자
  • 승인 2013.09.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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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가족 상봉 나흘 앞두고 연기
상봉 대상자 이종신씨 망연자실
▲ 제주에서 유일하게 이산가족 상봉자 최종 명단에 이름을 올린 이종신씨가 가족 사진을 만지며 형 이종성씨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제주매일 김동은 기자] “북에 있는 형님을 만나려고 비행기 표도 끊어 놓고 선물까지 미리 사놨는데···”

오는 25일부터 엿새간 금강산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추석계기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연기됐다는 소식을 접한 이종신(72·제주시 삼도1동)씨는 착잡한 심정에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제주에서 유일하게 이산가족 상봉자 최종 명단에 이름을 올린 이씨는 65년 동안 보지 못했던 형 이종성(84)씨와의 재회를 앞두고 있었다.

이를 위해 이씨는 아내 문옥선(70·여)씨와 아들, 그리고 여동생 이영자(69·여)씨 부부와 형을 만나러 가기 위해 비행기 표와 숙소를 예약하고, 선물도 미리 준비해 두는 등 상봉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그런데 이산가족 상봉을 나흘 앞둔 21일 북한이 상봉 행사를 돌연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행사를 불과 나흘 앞두고서다. 헤어진 형을 만날 생각에 들떠 있던 이씨는 허탈감에 망연자실하고 말았다.

이씨는 “형님을 만나면 드릴 속옷과 양말도 사놨는데 이산가족 상봉이 연기됐다는 날벼락 같은 소식을 듣고 다리에 힘이 풀려버렸다”며 “지금 심정은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 같다”며 착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이어 “형님을 만나면 지금까지 안 아프고 건강하게 살아 있어줘서 고맙다는 말을 가장 먼저 하고 싶었다”며 “하지만 이산가족 상봉이 기약 없이 미뤄지면서 이 말을 하지 못하게 됐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씨는 예약해 뒀던 비행기 표와 숙소를 모두 취소하고 TV 앞에만 앉아 있다고 했다. 혹시나 다시 상봉이 재개된다는 뉴스가 나올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다.

그는 “아직 상봉이 완전히 취소된 게 아니라 잠정 연기라고 하니까 조금 더 기다려보겠다”며 상봉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한편, 이씨의 친형인 이종성씨는 1948년 4·3사건이 발발할 당시 영문도 모른 채 인천소년형무소로 끌려갔다. 이후 1950년 6·25 전쟁이 터지면서 이씨는 형과 연락이 완전히 끊겼다. 전쟁 통에 형의 생사도 확인할 수 없었다.

형의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자 이씨는 45년 전 고향인 제주시 애월읍 유수암리에 형의 묘비를 세우고 생일인 8월 26일마다 제사를 지내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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