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년 만에 北에 있는 兄 종성씨 만나는 이종신씨 감회
1950년 6·25 전쟁 발발 이후 생사 모른 채
생일 8월26일 제사···유수암리 묘비도 마련
1950년 6·25 전쟁 발발 이후 생사 모른 채
생일 8월26일 제사···유수암리 묘비도 마련

남북 적십자사가 16일 오전 판문점 연락관 접촉을 통해 남북 이산가족 상봉자 최종 명단을 교환한 가운데 제주에서 유일하게 명단에 이름을 올린 이종신(72·제주시 삼도1동)씨는 형을 만날 생각에 기쁜 내색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 제주시 삼도동 자택에서 만난 이씨는 연신 함박웃음을 지으면서 며칠 후면 만날 형에 대한 기억을 조금씩 풀어놓았다.
2남3녀 중 넷째인 이씨가 형의 얼굴을 본 지도 어느덧 65년이 지났다. 1948년 4·3사건이 발발하면서 이씨의 아버지와 당시 17살이던 형 이종성(84)씨는 영문도 모른 채 인천소년형무소로 끌려갔다.
당시 형무소에 전염병이 돌면서 건강이 쇠약해진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형은 건강을 회복하면서 형무소에서 나올 수 없었다. 이후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했고, 결국 형과 연락이 완전히 끊겼다. 전쟁 통에 형의 생사도 확인할 수 없었다.
이씨는 형의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자 45년 전 고향인 제주시 애월읍 유수암리에 형의 묘비를 세우고, 생일인 8월 26일마다 제사도 올렸다. 형이 살아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씨는 “어렴풋이 기억하는 형은 때로는 엄격했지만 정이 많았다”며 “훤칠한 데다 남자답게 잘 생겼다. 4·3사건 때 잡혀간 것도 훤칠하니 소년이 아니라 청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회상했다.
형을 만나게 된다는 사실이 기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가슴이 미어지기도 한다. 15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형을 애타게 찾았기 때문이다.
그는 “어머니가 생전에 형을 한 번만 봤으면 좋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셨다”며 “이산가족 상봉이 더 빨리 이뤄졌으면 좋았을 텐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씨의 아내 문옥선(70·여)씨는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아주버님께서 살아계신다는 연락을 받고 아버님과 어머님 묘소에도 다녀왔다”며 “아버님과 어머님이 ‘잘 만나고 와라’고 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이씨는 “형님을 만나면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묻고, 또 어린 시절 고향에서 매미 잡고 냇가에서 놀았던 이야기도 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남북 이산가족 상봉은 25일부터 엿새간 금강산에서 진행된다. 이씨 부부와 여동생 이영자(69·여)씨 부부, 그리고 이씨의 아들은 상봉을 위해 금강산으로 향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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