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어도 희망이 없어···아예 생각 안 해요”
“보고 싶어도 희망이 없어···아예 생각 안 해요”
  • 김동은 기자
  • 승인 2013.09.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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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에 두고 온 가족···그리움에 사무치는 사람들
100세 황도숙씨 1·4후퇴 때 남동생들 두고 피난
김원희씨 6·25 전쟁 후 둘째 누나와 연락 끊겨
▲ 황도숙씨가 주름진 손으로 눈물을 훔치고 있다.
“이젠 안 보고 싶어요. 보고 싶어도 희망이 없으니 아예 생각을 안 해요. 이젠 안 보고 싶어….”

제주시 외도동에 사는 황도숙(100·여)씨는 요즘 따라 북에 있는 잊혀졌던 가족들의 얼굴이 조금씩 아른거린다. 민족 최대의 명절인 추석이 코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5일 외도동 자택에서 만난 황씨는 북에 있는 가족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3남매 중 첫째인 황씨가 부모님과 남동생들의 얼굴을 본 지도 어느덧 63년이 지났다. 함경북도 청진시가 고향인 황씨는 6·25 전쟁이 발발한 이듬해 1951년 1·4후퇴(1950년 12월 말에서 이듬해 1월 초 사이) 때 남한으로 내려왔다.

당시 경찰이었던 남편이 제주로 발령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편이 제주로 먼저 향했고, 황씨는 뒤늦게 딸과 아들을 데리고 피난을 내려왔다.

자식들을 데리고 피난길에 오르면서 차를 몰래 얻어 타고 내리고를 반복했다. 그 때마다 겁을 잔뜩 먹은 자식들이 울음을 터뜨리기 일쑤였다. 황씨는 “피난가는 데 그러다 들키면 어떡하냐”면서 딸과 아들을 죽여 버리겠다는 말도 들었다고 했다.

황씨와 자식들은 무사히 제주로 내려올 수 있었지만, 남동생 충군(90)씨와 운산(85)씨와는 연락이 끊겼다. 6·25 전쟁 통에 남동생들의 생사도 확인할 수 없었다.

급기야 제주로 내려온 뒤 몇 년 지나지 않아 남편은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다. 그 이후로 황씨는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며 자식들을 길러냈다. 그러는 동안에도 몇 날 며칠이고 북에 있는 남동생들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고 한다.

황씨는 “세월이 흐르다 보니 남동생들의 얼굴이 잘 생각나지 않는다”며 주름진 손등으로 눈가를 훔쳤다.

황씨의 외손녀 이은희(40·여)씨는 “할머니께서 이산가족 찾기 TV 프로그램이 방영될 때마다 북에 있는 가족 이야기를 들려주곤 하셨다”며 “5년 전 어머니(황씨의 딸)가 돌아가신 이후로는 부쩍 눈물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김원희(86·외도동)씨도 “누나의 얼굴이 가물가물하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김씨의 가족은 한림이 고향인데 1947년 둘째 누나인 김옥제(92·여)씨가 결혼을 하면서 함경북도 청진시로 넘어갔고, 6·25 전쟁이 나면서 누나와는 연락이 완전히 끊겼다.

누나와 헤어진 뒤로 가족들의 이름이 또렷이 적힌 호적등본을 보는 게 김씨의 하루 일과가 돼 버렸다. 김씨는 “호적등본을 볼 때마다 옛날 생각이 많이 난다”며 “살아 생전에 누나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봤으면 소원이 없을 것 같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제주적십자사에 따르면 현재 제주에서 황씨와 김씨처럼 북에 있는 가족과의 만남을 애타게 기다리는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는 모두 576명이다.

이 중 일부는 지금까지 진행된 18차례의 상봉 행사를 통해 북에 있는 가족과 재회하는 감격의 기쁨을 누렸다. 그러나 상봉자로 선정되지 못한 대다수는 북에 두고 온 가족을 만날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한편, 남북은 오는 13일 이산가족 후보의 생사확인 결과가 담긴 회보서를 교환하고 사흘 뒤인 16일 이산가족 상봉 최종명단을 교환할 예정이다. 이산가족 상봉은 25일부터 엿새간 금강산에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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