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땅에 물을 주며-공옥자
마른땅에 물을 주며-공옥자
  • 제주매일
  • 승인 2013.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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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옥자-수필가

  지난해의 이야기다. 마침 애조로가 뚫리며 농장 북쪽 백여 미터 지점에 육차선 도로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방풍림 역할을 하던 칙칙한 삼나무를 베어 내고 장비를 불러 억새와 칡넝쿨로 뒤엉켜 발조차 들일 틈 없던 밭을 뒤엎었다. 경사면은 돋우고 둔덕은 허물어 반듯한 땅을 만드느라 전심전력을 다했다. 조금은 환해진 듯하다.
  빈 터로 두면 수고한 보람 없이 잡초가 무성해 질 게 틀림없으니, 늦은 봄에야 서둘러 관상목 천여그루 심었다. 심고 나서 비가 오지 않아 계속 나무에 물 주느라 체중이 엄청 빠졌다. 물 줄 때마다 생기를 회복하는 녀석들은 기특해서 더 주고, 시들거리는 놈에겐 살아나길 바라며 물을 더 부었다, 바로 그 순간에 ‘아, 이게 바로 하나님의 마음이구나.’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상한 갈대도 꺾지 않고 꺼져가는 등불도 끄지 않으신다는 성서의 말씀이 떠오른 것이다. 죽어가는 묘목을 살리려는 마음, 이게 바로 잘 못을 고치고 올바로 살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심정이 아닐까. 죄와 악이 지축을 흔들어도 아직 기다리시는, 신의 자비가 계속되는 이유를 알 듯 했다. 사람이 다시 창조의 의도 데로 사는 날이 오게 될지 아득하지만 식물 한 포기조차도 살아나기를 비는  절절한 이 심정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거니 싶었다.
 시간이 좀 지나자 죽어가던 나무뿌리 근처에서 기적처럼 올라오는 새 순을 발견했다!  그렇게 되 살아 난 나무가 거의 반에 반을 넘었다. 보람이란 이런 것이야, 한 숨 돌리며 지주 대를 세우고 조심조심 비료도 주었다. 여름, 가을, 겨울, 잘 견디고 해가 바뀌어 다시 여름, 금년 제주도엔 장마가 실종이었다. 폭염은 사정이 없고 비는 오지 않았다. 어느 날 잠시 잠간 비다운 비 한줄기 내려 타들어 가던 여름작물이 고개를 들었다. 얼마나 고맙던지 몇 번이고 고개를 숙였다. 예부터 농사는 하늘이 짓는다 했다. 하지만 오늘날도 그러한가. 아니다, 사막도 옥토로 만드는 세상이다!
 제주도는 해변으로 빠지는 물도 많고 우기에 쏟아지는 빗물을 가두어 두는 공사를 잘한다면 물 부족 사태는 없을 것이다. 아직 너무도 소극적인 물 관리 행정에 문제가 없는지 검토해 볼 일이다. 오는 지방 선거에서 도의 수장을 뽑을 때는 이 문제를 반드시 거론해야 하리라. 농업용수, 하늘만 바라보는 시대는 지났다는 걸 보여줄 사람이 필요하다. 빠르게 변하는 기후에 대응하여 살아남을 길을 모색해야 할 때가 너무 늦지 않기를 부탁하고 싶다.   
  일 탐으로 지치면 문득 끼고 있던 장갑 벗어버리고 서둘러 땀을 씻는다. 냉수의 찬 기운에 생기를 찾고 남쪽 창을 열어 한라산을 바라본다, 날마다 보는 산은 변신의 천재다. 오늘은 흰 구름 한 조각 머리에 얹고 유유자적하다. 어김없이 불 볕 더위가 숨을 조이더니 처서 지나며 선들 바람이 일고 그 어간에 천행으로 비도 흡족할 만큼 내렸다. 제주도 여름 농사가 가까스로 위기를 넘긴 셈이다. 태풍이 없었던 덕으로 참깨 고추 농사는 풍작이란다.
  <만물은 오고와도 다 오지 않고, 가고 가도 다 가지 않는다.>고 읊었던 화담 서경덕의 시가 떠오른다. 마음이 허허롭다.

공옥자(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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