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면으로 부활한 편지와 전보
화면으로 부활한 편지와 전보
  • 제주타임스
  • 승인 2005.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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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것은/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느니라// 오늘도 나는/에머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더욱더 의지삼고 피어 흥클어진/인정의 꽃밭에서/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한방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 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깃발’의 시인 청마 유치환 선생 ‘행복’이라는 한편의 시다. 이 시를 통해 우리는 기억속에서 아스라이 사라져 가고 있는 다정다감한 언어들과 만날 수 있어 감회롭다. 우체국과 우표, 편지와 전보지, 그리운 사람과 애틋한 연분 등 등... 흘러가 버린 추억의 뒤안길에 꽃씨처럼 흘려버린 말들이다.

60년대까지만 해도 편지와 전보는 먼곳의 소식을 발신하고 수신하는 매체였다. 군인간 아들이 오랜만에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 보낸 편지가 집에 날아들면,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아버지나 어머니께서는 동네 서기를 찾아가서 편지 내용을 읽어 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면 동네 서기는 헛기침을 하고 목청을 가다듬은 다음에 낭낭한 목소리로 편지를 읽어준다.

그러면 아들의 소식에 눈가에는 물안개가 어리게 마련이었다. 그러고는 편지 대필을 부탁한다. 그러면 동네 서기는 전하고 싶은 내용을 듣고는, 첫 머리에 ‘만물이 소생하는 양춘가절을 맞아, 만수무강 하기를 기원하오며...’라고 쓰고는 한문투의 편지를 대필해 준다. 그러면 부모는 우체국이 있는 곳에 다니는 학생들에게 편지를 부치거나, 아니면 오일장 열리는 날에 우체국에 가서 떨리는 손으로 우표를 사서 편지를 부치기 마련이었다. 편지 뿐만아니라 갑작스런 일이 생기면 전보를 쳤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경우라면, ‘할아버지 급 사망, ○월 ○일 장례’라고 하면 멀리 떠났던 손자는 때마춰 귀향하기도 했다.

얼굴에 여드름이 청춘의 상징처럼 돋아나는 고등학생쯤 되면 글잘 쓰는 학생은 연애편지 대필로 찐빵 얻어먹기에 여념이 없었다. 마음에 드는 여학생에게 절절한 구애의 편지를 보내야 하는데, 글 쓸 재주가 쥐꼬리만큼도 없기에 글 잘 쓰는 친구나 후배에게 연애편지 대필을 부탁해야 했다. 그러면 유명한 시를 베끼거나 모방해서 편지를 써 주고 찐방을 대필료로 받았다.

편지와 전보의 효력은 전화의 발달로 점점 퇴조해 갔다. 새마을 운동이 요원의 불길처럼 번저간 70년대에 접어들면서, 마을회관에는 확성기와 전화가 첨단의 통신수단으로 등장했다. 글에서 말로 문명이 전환된 것이다. 먼 곳에 가 있는 식구나 친족이 마을회관으로 전화하면, 마을회관에서는 확성기로 누구네집에 전화가 왔으니 와서 받으라는 식이었다. 90년대에 접어들면서 집집마다 전화가 놓이게 되면서 동네전화는 전설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인터넷과 핸드폰 세상이 열리면서 편지와 전보는 종이가 아닌 화면을 통해 부활된다. 이메일로 편지를 보내고 핸드폰으로 문자메시지를 송신하면서 의사소통을 하는게 보편화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전하고자 하는 내용을 제대로 문자화하지 못한 다는데 있다. 문장 수업을 제대로 학습한 적이 없기에 생각나는 대로다.

맞춤법은 엉망진창이고 내용은 머리와 꼬리가 구분없이 한마디로 범벅덩어리다. 지금이야말로 글쓰기를 제대로 가르치고 배울 때이다. 전하고 싶은 생각을 제대로 문장화 하는 노력이야말로 첨단문명을 슬기롭게 누리는 지혜가 아닐까 싶다. 첨단문명이 발달될수록 먼고향으로, 그리운 사람에게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는 아름다운 세상이 그리워진다.

현 춘 식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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