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교회협의회(WCC:World Council of Churches)가 올 가을 한국에서 제10차 총회를 연다. 세계 140개국 교회단체 대표들이 모여 ‘생명의 하느님 우리를 정의와 평화로 이끄소서!“라는 표어를 내걸고, 10월 28일부터 부산에서 국제대회가 열릴 예정이다.
우리는 세계교회협의회 운동을 보통 ‘에큐메니칼 운동’이라고 한다. ‘에큐메니칼’은 “사람들이 사는 온 세상”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세계교회협의회 운동은 두 가지 비전이 있는데 하나는 ‘책임사회의 비전이요, 다른 하나는 ’지속가능한 사회‘에 대한 비전이다.
교회가 달라지고 있다. '교회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한국에서도 하기 시작했다. 교회의 목표가 건물을 키우고 신도를 늘리는 양적 성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교회가 있는 지역사회 안에서 선한 일을 행하는 신(神)의 도구가 되는 것"이라고 믿는 교인이 많아졌다. 이런 교회 운동을 흔히 '미셔널(Missional) 교회'라고 부른다.
한국 교회가 급속히 성장하면서 일부 교회에선 전도의 열정을 유지하는 것조차 버거워하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미셔널 교회’는 한국 교회의 새로운 가능성 missional(선교사단의)에서 출발하였고, 이는 바로 mission(선교)에서 파생하였다. 선교는 그리스도교 신앙을 전하는 교회의 활동이다. 구약성서는 하느님을 세계와 민족들의 창조자로 선포한다. 하느님의 관심은 끊임없이 세계와 인간에게 쏠리고 있음을 보여 준다.
필자는 제주지역 ‘미셔널 교회’로 ‘모슬포 교회’를 꼽고 싶다. 1909년 9월 서귀포시 대정읍 교인 신창호의 집에서 예배를 올리기 시작하면서 산남지역 최초의 교회가 탄생하였다. 평양 출신인 이기풍 목사는 1908년 제주도에 들어와 복음의 씨앗을 뿌렸다. 이기풍 목사는 일제의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투쟁을 벌이다 심한 고문을 받았고, 1942년 순교하였다.
이어 윤식명 목사는 독립자금을 모금하다 징역 10월을 선고 받았다. 그는 1920년 조국의 광복을 염원하며 ‘광선의숙’(光鮮義塾)을 설립, 신교육을 가르치며 후학을 양성하였다. 바로 "교회가 있는 지역사회 안에서 선한 일을 행하는 신(神)의 도구가 되는 것"을 실천하는 본보기를 보여주었다.
해방 후 불어닥친 제주4·3의 광풍으로 이도정 목사는 1948년 순회 예배를 가던 중 무장대에 붙잡혀 구덩이에 파묻혀 생매장을 당했다. 조남수 목사는 ‘산사람’으로 몰린 양민 3000여 명을 살려내면서 ‘한국의 쉰들러’로 불리고 있다.
어디 그 뿐인가? 모슬포교회는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 150명에게 숙식을 제공했다. 최근에 시무했던 모갑경 목사는 민주화 과정 속에서 가장 진보적인 생각으로 군사정권과 대결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한국기독교장로회는 창립 100주년을 맞아 사료전시관을 개관한 모슬포교회를 유적교회로지정하고, 1924~1930년까지 기록한 ‘당회록’(堂會錄)과 1934~1962년에 작성한 제주노회 ‘노화록’(老會錄)을 역사유물로 높이 평가하였다.
여기서 ‘하느님의 선교(Missio Dei)’의 관점에서, 교회의 사명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교회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변함이 없는 구원의 사건을 행하는 것이라고 대답할 수 있다.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항상 변함이 없으신 분이기 때문이다. 변함이 없다는 말은 시간과 관계없는 영원성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를 교회당 안에서만 찾으려는 신자가 많으나, 그리스도가 없는 교회당도 많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의 임재를 찾듯이, 교회 밖에서도 그의 임재를 발견하고 그것을 세상에 입증해야 된다. 교회 밖으로 향해 나간다는 말은 결코 중심에서 변두리로 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이 계시는 중심으로 향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미셔널 교회’이다.
김 관 후-시인/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