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과 치유에 관한 기호로 가장 선연히 떠오르는 그림, ‘절규’가 있다.
불확실한 인생, 불행한 운명의 상징인 듯, 배경으로 비스듬히 질러진 다리 난간 위에서 일체의 부수적인 것이 생략된 채, 겹쳐진 선으로만 표현된 인물이 창백하게 겁에 질려 극단적으로 확대된 눈동자, 핼쑥한 얼굴과 두 귀를 으스러지게 감싸 쥔 손, 그리고 악을 쓰듯 벌린 입으로 터져 나오는 귀청을 찢을 듯한 절규가 실로 보는 이로 하여금 소스라치게 한다.
이 여인은 무슨 곡절로 이 핏빛 노을 아래서 저토록 울부짖고 있는 것일까….
나 또한 터지는 심장의 파열음이 솟아 저렇듯 어디에선가 외치고 싶었던 아픔의 날이 있었지….
백오십 여 년 전의 그림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오늘날 우리 정신의 현주소를 확인하게 된다.
이 그림을 그린 화가는 노르웨이 출신의 에드바르 뭉크다.
군의관의 아들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사춘기 무렵에 어머니와 누이를 폐결핵으로 잃고 이어서 여동생마저 정신질환을 앓게 되는 실로 불운한 운명의 사내였다.
그 가운데서 그의 유일한 생존법이란 기성화단에 등을 돌린 채, 그저 붓과 물감으로 자신을 표현해 내는 것뿐.
천 여 점이 넘는 유화와 만 팔천 여 점의 판화 등 한 인생에서 가능할까 싶으리만치 다작을 남긴 것도 놀랍지만 그림의 변천 과정을 보면 그 자체가 자서전으로 읽힌다.
여든 살에 삶을 마감하기 직전에 남긴 그림은 심지어 경전을 대하듯 숙연해 진다.
‘시계와 침대 사이의 자화상’에 담긴 그의 모습엔 가슴이 먹먹해 오는 달관이 담겨있다.
저토록 스스로에게 가혹하게 채찍을 가하며 세상으로부터 격리시켜 몰입을 통해서 저렇게 스스로 치유를 이뤄낼 수도 있는 거구나…
현대인의 생활반경에서 유난히 ‘치유’며 ‘힐링’, ‘웰빙’ 개념이 어수선하게 넘쳐나고 있다.
그만큼 사람과 사람 사이, 간격의 온도는 없고 뭉클하고 찡한 일이 없어져간다.
때문에 기운이건 정신이건 막힘 현상으로 심리적 육체적 탈이 잦아지는 것이리라…
제주는 과거 선비들의 ‘격리’와 ‘몰입’을 구가했던 유배인들의 섬이다.
천혜의 자연환경으로 구경 잘한 여행을 너머 잘 머물다 치유와 회복을 얻고 가는 장기적, 혹은 지속적 삶터로의 청사진을 여기저기 내다 걸고 있는 추세다.
그런 면에서는 제주의 자연이 그러하듯 깊은 사람사랑을 바탕으로 열려있어야 할 것이다.
천혜의 자연 못지 않게 제주사람들의 인심과 너른 품이 더 맑은 치유를 얻어가게 할 것이다.
일상 아닌 곳에서의 푸근한 인심은 그 기억만으로도 치유의 힘이 있다.
격리시키고 몰입하게 하는 것은 제주의 땅이 할 일이지만 사람들 사이에 다가갈 힘을 얻게 하는 건 제주의 사람들이 할 몫이다.
제주라는 아름다운 섬이 치유와 회복을 희망하는 이들에게 환경과 사람이 합세하여 도움을 줄 수 있는 땅이기를 기대한다.
이재향 (주)리앤리웍샵대표.카피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