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호(作號) 이야기 - 이용길
작호(作號) 이야기 - 이용길
  • 제주매일
  • 승인 2013.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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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학의 대가였던 양주동선생의 호는 ‘무애(无涯)’이다. 그는 ‘가없는’ 것을 좋아해 ‘없을 무(无-無의 古字)’와 ‘물가 애(涯)’자를 썼다. 국어학자 이희승선생은 ‘둔하고, 무재(無才)하며, 변통성조차 없는 자신을 <돌>에 비유’해, 한 개의 돌이라는 의미의 ‘일석(一石)’을 호로 정했다.
예부터 호는 본명을 대신해서 아무나 허물없이 부를 수 있도록 지어진 칭호이기 까닭에, 정작 원(原)이름보다는 호가 더 잘 알려진 경우도 흔하다. 이황은 퇴계(退溪), 이이는 율곡(栗谷), 정약용은 다산(茶山), 한호는 석봉(石峯)으로 기억되고 있는 예(例)가 그것이다. 현대에 와서도 호는 학자나 문인겳뭡解〉容疸?아니라, 정계겧卉떠瓦【??두루 이용됐다. 1950년대만 하더라도 해공 신익희?유석 조병옥곀蔓?윤보선겙÷?김병로 등 웬만한 명사는 오히려 호가 익숙하게 들릴 정도였다. DJ갘P갡B같은 영문약자와는 그 격(格)에 차이가 있다.
호(號)의 사전적 의미는 ‘본명이나 자(字)이외에 쓰는 아명(雅名)’이다. 그래서 호를 ‘아호(雅號)’라고도 한다. 호는 스승과 웃어른겮국?동료들이 지어주는 것이 관례이지만, 본인이 직접 작호(作號)해 쓰는 경우도 있다. 이른바 자호(自號)인 것이다. 스스로 호를 만들어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는 나름대로의 진지한 ‘작호의 변(辯)’이 있다.
 먼저 항일투쟁의 독립운동가 김구선생. 그의 호는 ‘백범’이다. 백은 백정(白丁)의 백(白)자, 범은 범부(凡夫)의 범(凡)자. 아무리 천하고 무지하다는 최하층의 사람이라 할지라도 애국심만큼은 강해야 한다는 교훈적인 내용이 들어있다. ‘씨올의 소리’ 주인공 함석헌선생의 호는 ‘신천옹’이다. 원래 호가 없었으나 남들이 이름 다음에 ‘옹(翁)’자를 붙이기 시작하자, 이왕 ‘옹’으로 불릴 바에는 신천옹(信天翁)으로 썼으면 하고, 자의반 타의반으로 지었다. 신천옹은 ‘바보 새’를 뜻한다.
겸손의 언어로 호를 만든 사람은 또 있다. 강원도 원주인(人) 장일순선생이다. 그는 매우 훌륭한 인품의 선각자인데도 생시에는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한살림 운동’의 창시자라고 하면, 아는 이들이 있을 터이다. 그의 호는 ‘일속자(一粟子겵?한 알)’. 취재기자가 물었다. “하필이면 호가 ‘좁쌀 한 알’입니까” “세상에서 제일 하잘 것 없는 조 알갱이를 생각하면서 교만해지려는 마음을 추스르려는 거지.”
호는 스스로 짓든, 남이 만들어주든, 그 사람의 특장(特長)이나 취향, 직무와 주위환경, 인생관과 장래소망 등을 담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가하면 출신지를 나타내는 호도 있다. 동아일보 창업자이자 제2대 부통령을 지낸 김성수선생의 호는 ‘인촌(仁村)’. 전북 고창군 부안면 인촌리에서 태어난 그는 본향명칭을 그대로 썼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출생지인 거제도의 거(巨)자와 정치적 기반인 부산의 산(山)자를 따서 ‘거산’이라고 하였다. 한글 아호도 순수해서 좋다. 가람 이병기겢跏?문익환겳秉?최현배곀騎下?주시경. 고상하고 아름답다.
 몇 년 전부터 ‘계산’이라는 자호(自號)를 쓰고 있다.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은 “고향인 사계리의 계(溪)자와 산방산의 산(山)자를 썼구나”라며 바로 알아본다. 친형제나 다름없는 한 지인(知人)은 “시내 계(溪)자, ‘시내 산’이라, 어디서 많이 보아온 성산(聖山)이름 같다”며 빙그레 웃는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어찌 감히 성서에 나오는 산명(山名)을 참칭할 수 있으랴.

 

이용길 행정학박사.전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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