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게 평생 모은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는 사람을 종종 본다. 대 기업에서 하는 희사 보다 결코 적지 않은 액수도 놀랍거니와 그 사람의 배경이나 살아온 자취가 험난할 때 더욱 가슴이 뭉클해온다. 오래전에 TV 에서 한 할머니의 미담을 소개했었다. 십억의 재산을 대학 장학금으로 내어 놓은 분이다.
대역으로 재구성한 그 분의 라이프 스토리에 눈시울이 뜨거웠을 뿐 아니라 불평하며 살아온 자신이 부끄럽고도 민망했다.
초등학교에선 언제나 우등생이었고 특히 수학을 잘했던 소녀는 그렇게도 가고 싶은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친구의 책을 빌려가며 독학하려 애쓰지만 부모의 강요에 의한 억지 결혼을 하게 된다. 운명은 그녀에게 가혹했을까 불임으로 시댁의 눈총을 받게 되고 남자는 밖에서 다른 여자를 임신시켜 데리고 온다. 그녀는 하녀처럼 작은댁의 산바라지를 하지만 결국은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다. 막막한 절망감에 몇 번이고 죽음을 생각하면서도 그 충동을 이겨내려고 이일저일 가리지 않고 억척같이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아기 울음소리에 나가 보니 대문 밖에 여아가 있었다. 하늘이 주신 선물이라 생각하고 애지중지 길렀다. 사는 보람을 느끼며 행복하다고 여길 무렵 또 한 번의 불행이 그녀를 엄습한다. 딸이 교통사고를 당해 장애아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녀는 강인했다 불운을 딛고 일어서서 딸이 다니는 특수학교의 많은 장애아들을 돌보려는 의지로 기운을 차린다. 그들의 후원자가 되어 후원금을 내고 특히 책을 트럭으로 사 날랐다. 그 학교 뿐 아니라 전국 각지의 특수학교마다 책을 사 보냈다. 그녀는 불행을 통해서 거듭 새로 일어서곤 했다.
아직도 서울 가락시장 한편에서 젓갈 장사를 하고 계시다는 데 사는 집과 상점이 두어 정거장 이라 날마다 걸어서 다니고 있었다. 팔십을 눈앞에 둔 그 분의 걸음걸이는 팔팔했다.
집에 오면 이제도 한자공부를 하느라 엎드려있는 모습이 자꾸 나를 돌아보게 했었다. 만일 그녀가 제대로 공부할 수 있었다면 틀림없이 뛰어난 학자가 되었을 성 싶었다.
평생 모은 돈을 선 듯 내어놓은 것은 명예를 탐해서가 아니다 자기처럼 불행한 여건의 젊은이를 돕기 위한 일념일 뿐, 못 배운 한을 그렇게 풀고자했을 것이다.
역경을 디디고 일어서서 성공적인 인생을 살았다는 것은 자아를 확대하여 타인의 불행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 안으려는 정신적 성숙이다. 그 분이야 말로 인간 승리자 시다.
그 분은 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일에 일조함으로서 등불을 높이 드셨다.
여생이 평안하시기를 진심으로 빈다.
공옥자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