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성적
학교 성적
  • 제주타임스
  • 승인 2005.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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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이른 아침 길가에 오가는/ 튼튼한 젊은이들, 어린 학생들/ 그들이 공던지는 날랜 손발/ 책가방을 든 여학생의 힘찬 두 팔/ 그들의 빛나는 얼굴, 활기 있는 걸음걸이”(양주동) 순수와 열정에 찬 생명력을 지닌 어린 학생들의 모습이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이런 학생들이 학교에 모여 삶과 희망의 의미를 터득하였고, 그것이 인류 역사를 지탱하고 진전시켜 온 바탕이 되었던 것이 분명하다.

“우리가 교육을 찬성하는 것은 일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들자는 것이 아니다. 일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좀더 좋은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함이다. 학교를 여는 자는 감옥을 닫는다.” 이렇게 강조한 교육학자가 있다. 우리는 이런 학교에서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길을 깨우쳤고, 더욱 바람직한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왔다.

 며칠전에 각급 학교가 입학식을 거행하였다. 특히 초등학교의 입학식 장면은 아름다움이었다. 어린이들이 모인 곳에는 햇살도 손님으로 초대되는가 보다. 물오리가 나면서부터 헤엄을 치듯이, 그들은  천성으로 햇살과 더불어 놀 줄 안다. 그들이 조그만 입으로 조잘대는 곳에 평화의 동산은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학교라는 마당에 왔다는 호기심으로 부푼 마음들이 시냇물처럼 노래하며 흘러간다.

그것은 우리들에게 설레는 기쁨과 기대감을 안겨 주기에 충분하다. 이렇게 학교에 들어온 새로운 학생들은 가장 좋은 동반자인 선생님을 만나게 될 것이다. 선생님은 개인 날씨나 비바람치는 날에도, 학생들과 더불어 신명나게 떠들고 노래하고 뛰어다니며, 학생들의 꿈을 키워 나아갈 것이다.

 그러나 요사이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우리의 밝은 기대와는 사뭇 어긋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보도는 우리를 안타갑게 한다. 고등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성적 조작 사건이 그 중의 하나이다. 물론 지극히 일부 학교에서 아주 소수의 교사들이 이런 불의한 행위를 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고, 또 그렇게 믿고 있다. “교사는 자기의 감화가 정지되기를 바라지 않는다.”(아담스)라는 교훈처럼,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자신을 촛불처럼 태우면서 사명에 헌신하고 있음을 안다. 따라서 우리는 일부 교사의 부조리에 대한 보도를 보면서, 학교를 곁눈질로 바라보는 태도를 삼가야 될 줄 안다.

 “사람은, 아이를 점잖아지도록 초등학교에 보낸다. 그리고 야단스럽게 되도록 대학에 보낸다.” 고 꼬집은 학자가 있다. 성적을 조작하여 대학에 보내는 일부 교사와 학부모를 지적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우울해진다. 그렇다면 이러한 부조리의 근복적인 원인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말할 것도 없이 오늘의 사회풍조에 있는 것임이 확실하다고 여겨진다. 지나친 출세주의, 이기주의, 물신주의, 편의주의에 사로잡혀 아집과 욕망으로 살아가는 세태를 바로잡을 때, 우리의 학교 교실은 화기에 한 분위기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때, 교육은 우리가 찬성하는 방향으로 진전되어 나아갈 것이다. 사람은 아집과 욕망이라는 부정적 면도 가지고 있지만, 사랑과 친교라는 천사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 교육은 인간의 천사적인 면을 키우도록 도울 뿐만 아니라, 그것을 실천하는 자체에서 기쁨을 발견하도록 유도한다. 사실 인생에 있어서 교육의 효과는 신비스런 것이다. 그것은 저울에 달아볼 수도 없고, 도가니에 넣어 실험해 볼 수 없는 보배로운 가치이다.

 김 영 환 (전 오현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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