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지천’하면 우리가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단어, 무엇이 있을까? ‘분수대’, ‘쉼터’, ‘공원’, ‘동문시장’ 등등 따듯하고 정겨운 어감의 단어들을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해마다 지역신문에 반드시 등장하는 ‘부랑인’, ‘노숙자’, ‘술판’이라는 부정적인 단어를 가득 실은 기사를 읽다보면 왠지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필자도 자치경찰로서 근무한 기간 중 절반이상을 산지천에서 술에 취한 노숙자, 부랑인들과 씨름하며 보내왔기에 산지천의 실상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다. 때론 경찰관으로서 단속도 해보고 때론 친구처럼 대화도 나누면서 이들의 입장에서 문제를 파악하려고 하면서 필자는 한가지 명제에 도달하게 되었다.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 못한다.’ 영조실록에 보면 가난한 백성을 구제하는 기관인 경상도 진휼장(賑恤場)에는 굶는 백성이 17만 9천8백 65명, 떠도는 거지가 1만 1천6백 85명, 사망자가 1천3백 26명이었다.”라는 기록이 있다. 비단, 조선시대였기 때문에 노숙자가 이리 많았을까? 선진국으로서 현재 세계적 최고수준의 복지국가라는 평을 듣고 있는 캐나다는 어떠한가?
필자의 2002년도 캐나다 어학연수 시절, 밴쿠버의 번화가 롭슨 거리를 걷다보면 노숙자들이 인도상에 또는 교차로의 보행섬에 자리를 잡아 지나가는 사람,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에게 돈을 구걸하며 손을 내미는 모습을 매일 목격한 적이 있다. 실제로 필자는 하숙집에서 싸준 샌드위치를 매일 같은 장소에서 구걸하는 노숙자에게 건네곤 하였다. 선진국인 이웃나라 일본은 어떨까? 도심은 물론이요 동경의 유명한 관광지 우에노 공원에는 아예 노숙자들이 천막을 치고 노숙자 촌을 조성한 곳도 많다.
현재 우리의 산지천 모습은 어떠한가? 위에서 언급한 선진국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매일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젊은 노숙인들을 보면, 한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폐지를 줍고 다니시는 어르신들이 눈에 아른거려 측은지심은 이내 사라지고 만다. 하지만 이내 이들도 우리 사회 무관심의 피해자라고 생각에 이르게 되어 다시 한번 그들에게 손을 내밀게 됨은 비단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사실 경찰관의 한사람으로서 ‘나랏님’도 구제하지 못하는 ‘노숙인’을 구제하기 불가능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민,관이 합심하여 지금처럼 그들과 끊임없이 대화하고 지속적으로 따듯한 손길을 보낸다면 언젠가 우리 사회에서 건실하게 자립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제주도 자치경찰단 양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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