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넓지 않은 정원에 농약을 했는데도 나비들이 쌍쌍이 찾아온다. 꼭 작년에 왔던 그 나비 같지만 작년에 왔던 나비는 아니다. 화창한 봄날에는 나비를 앞장세우고 맑고 맑은 싱싱한 여성의 몸매같이 생명력을 과시한다.
‘나비효과’는 원래 지구의 한편에 있는 작은 나비의 날갯짓이 반대편에 와서는 태풍과도 같은 엄청난 결과가 되어 나타난다는 과학이론이다. 요즘 경제학계나 경영학계에서 연구 대상이 되고 있는 ‘카오스이론’이나 ‘복잡 계(複雜系complexity system)’도 여기에서 출발한 이론이다.
나비의 위대한 힘은 싱싱한 꽃을 찾아 새 생명력을 탄생 시키는 데 있다. 나비와 벌이 수컷 이라면 꽃은 암컷이다. 이건 대우주의 섭리인지도 모른다. 나비와 벌, 새들이 찾는 꽃의 아름다움은 향기와 생명력이다. 아무리 아름다워도 생명력이 없는 종이꽃은 꽃이 아니다.
사람도 마찬 가지다.여성의 미는 생생한 생명력에서 온다. 맑고 시원한 느낌, 낭랑한 음성, 여성다움 또는 여성스러운 가벼운 걸음걸이, 세련된 업무스타일, 아름다운 목소리, 생에 대한 희망과 환희, 건강한 여인의 발산하는, 특히 젊음을 풍기는 싱싱한 필링(feeling), 애정을 가지고 있는 얼굴에 나타난 윤기, 분석 할 수 없는 생의 약동, 이런 것들이 나비(숫컷)를 부를 수 있는 여성의 생명력이다.
우리는 연약한 꽃과 나비에서 가장 위대한 힘과 미를 발견할 수 있다. 아무 생존의 무기가 없음에도 만물에게 아름다움과 행복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일지라도 나비가 찾지 않는다면, 꽃으로서 의미가 없다. 나비야 말로 봄이 왔음을 알리는 진정한 전령사인 동시에 대 자연을 지배하는 것이다.
나비는 미와 사랑의 수호자이다. 생존경쟁을 위한 그 어떤 공격과 방어 장치도 갖지 않으면서 다른 생명체에게 해를 끼치지도 않는다. 나비는 생존을 위해서 먹느냐 먹히느냐의 관계 속에서 사랑을 전파함과 동시에 혼돈이나 무질서를 해결주는 치유력(healing power)으로 자연을 지배한다.
생명체들의 삶은 먹이사슬 속에서 끊임없는 생사의 순간을 겪으면서 살아간다. 동물의 경우엔 약자를 잡아먹어야 생존이 가능한 냉정한 약육강식의 생태다. 그러나 나비의 생존은 약육강식의 생존경쟁에서 벗어나 있다. 꽃에서 꿀을 얻는 대신 꽃가루받이를 해줌으로써 생의 번식을 만드는 창조자가 된다. 꽃과의 밀월 같은 공생은 삶의 기본이다. 사자나 호랑이, 코끼리보다도 나비의 꽃가루받이는 요즘 화제가 되는 북한의 핵보다도 더 강한 우주의 근본을 만드는 힘인 동시에 효과다.
꽃들은 나비를 통한 꽃가루받이로 더 많은 종을 번식시켜 열매를 맺게 한다. 나무의 열매들은 동물들에게도 먹이가 되며 인간에게도 식량이 돼준다. 모든 생명체를 유익하게 만들고 식량을 제공하는 나비의 힘은 평화, 사랑, 번영, 화해, 축복의 의미로 다가온다.
나비는 하늘이 보낸 천사이다. 애벌레는 식물의 해충이지만, 나비가 되고부터는 다른 생명체에 해를 끼치지 않는다. 꽃과 나비는 이 세상의 아름다움과 행복, 사랑의 아이콘이다. 나비의 삶은 이채롭고 은혜롭다. 가장 연약한 곤충인 나비가 불어넣는 공존과 평화의 메시지는 우리 인간 삶에 희망과 평온을 안겨준다.
이보다 더 좋은 마음의 보약은 없다.
우리도 나비 같은 삶을 살 수는 없을까.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축복과 번영의 씨앗을 심어줄 수는 없을까. 갈등, 대립, 장애, 다툼, 증오를 없애고 상생, 화해, 평화의 길은 없을까. 각박한 삶의 현장 속에 나비를 보면서 나비가 지닌 아름다움과 평화의 은유법을 익힐 수 있으면 좋겠는 생각을 지금 날아다니는 나비의 날갯짓을 보면서 생각해본다.
김 찬 집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