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설화에 필자가 접한것은 신화와 전설의 글에서다.
자라면서 들은적 없고 이웃마을의 평범한 여인에게 물어봐도 마찬가지였다.
요즘 매스컴 등에서 제주의 창조신화로 언급되기에 일단 내가 가지고 있는 자료를 뒤져서 소박한 의견을 말하고자 한다.
장주근·현용준씨의 자료에 따르면 각지의 여러 사람의 짤막한 구술에 의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중 할망이 갈래로 흙을 떠서 쏟아 부은 것이 한라산이 되고, 조금씩 흘린 흙들이 도내의 작은 산들이 됐다는 부분이다.
어떻게 보면 한라산을 창조한 것 같이 보이지만 신의성이 엿보이지 않는다.
다른이가 제공한 내용에는 한라산을 베개 삼고, 다리가 바다에 잠겨서 발로 물장난을 했다는 것인데 이는 오히려 한라산의 영기를 누르는 것과 다름없다.
여러곳에 다리를 뻗쳐서 밟았다는 행위도 각 지방을 구박하는 것과도 같다.
또한 다른이가 제공한 자료를 보면 명주백통을 모아 속옷 한벌을 만들어 주면 육지까지 다리를 놓아주겠다기에 도내의 명주를 모았더니 99통밖에 안돼서 만들어 주지 못했다. 이 때문에 할망도 다리를 놓아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룰 수없는 약속으로 대가성을 요구하는 것은 신격에 미흡하고 미완으로 버려두는 신능도 의아스럽다.
사람들이 마지막 요긴한 부분을 부족하다는 이유로 미제공으로 대처한 것으로도 보여서 사람들의 응신의 뜻이 없었던 점으로 도저히 부각되지 않는다.
할망이 죽솥에 빠져 죽은 이유는 굶주린 아들들을 먹이려고 죽을 끓이다가 죽솥에 빠져죽었기 때문이라고 돼있다.
굶주리는 이들을 살리려는 뜻에서는 신업성이 보이는 듯 하지만 행위자가 남편과 부인으로 갈리고 그대상도 가족에 한정돼 있다는 데서 뜻이 바래진다.
옛부터 한라산을 가마로 비유하기도 해 죽은장소는 그렇다 해도 내막이 너무도 비극적이고 어이없는 일이어서 신화성을 떨어뜨린다고 할 수 있다.
할망이 비록 외래의 거인이라 할지라도 생명의 원천인 한라산을 열심히 빚어서 아끼고, 자신은 그 생명의 원천으로 되돌아간 것이면 창조와 사랑과 희생의 아름다운 신화로 후세에 전승됐을 것이다. 하지만 뭔가 모자라고 잘못된 결말로 끝나는 이야기로 남게된 것은 정말로 안타까운 일이다. 어쩌면 선인이 후인에게 허세와 오만과 과욕을 경계하는 이도를 보여준 것이 아닌가 싶다. 설문대의 여원에 대해 한마디 하자면 한자어의 혈문에서 오지 않았나 싶다. 무당을 뜻하는 샤만에 맞춰볼 수도 있지만 설화의 내용에 무속적인 요소가 보이지 않는다. 이 설화는 선격·신능·신업·응신의 여러면에서 창조신화로 보기는 어렵다고 본다. 차원을 달리하는 관점은 얼마든지 있을수 있으나 원소재와는 너무 다른 첨삭, 변형은 피할일이며 새로운 제보자나 내용이 있으면 다른말에서 물들은 점이 없는지 잘 검토할 일이다.
김공칠 전 제주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