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날은 다시 왔건만-오 태 익
5월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달이다. 석가탄신일,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부부의 날 등 각종 기념일이 빼곡한 것은 5월뿐이다. 달력을 보지 않고서는 다 알기도 힘들다.
‘부부의 날’인 5월 21일도 5월이 다 갈 때야 있어서 좀 아쉽다. 다른 행사에 휩쓸리다 보면 부부의 날은 그냥 쉬고 싶을 뿐이다. 부부의 날도 어느 목사가 10년 동안 사재를 털어 가면서 기념일 지정에 애쓴 결과로 탄생했다. 둘(2)이 하나(1)가 된다는 의미로 5월 21일을 정하고 지난 2004년부터 국가기념일로 제정됐다.
세상일이 만만찮고 무너져 가는 가정의 회복을 위해, 가정해체의 위기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둘이 하나 되어 합심한다는 것은 새로운 희망이다.
부부란 무엇인가. 가정의 근간이다. 원만하지 못한 부부가 노부모 봉양을 잘할 수 있으며, 자녀를 바르게 키울 수가 있을까. 오늘 많은 부부들이 언제든 터질 불씨를 안은 채로 살아간다. 부부는 가장 가까운 무촌이면서 갈라서면 촌수조차 필요 없는 남남이 아니던가. 갈라서면 다시 쳐다보지도 않을 남남이면서 화합을 이루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지금은 사라졌지만 연탄 리어커를 남편은 끌고 아내는 뒤에서 밀면서 시커먼 모습이 참 아름다웠다고 생각한다.
세상일이 뜻대로 안 되더라도 미소를 짓는 부부는 또 아름답다. 어쩌면 뜻대로 되는 것보다 안 되는 것이 복잡한 세상살이에선 많기 때문이 아니던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조그만 일의 다툼으로 세상을 등지는 일이 종종 있어 안타깝게 한다. 이제는 세상을 만만하게 봐선 안 된다.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각오로 임하면 길은 보일 것이다. 언제든 길은 찾는 자에게 가까이 있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즐거울 때나 슬플 때나 같이 하리란 주례사를 들어가면서 결혼한 부부이지만 즐거울 때가 그렇게 많지 않았을 것이다. 심하게 얘기하면 이삼십 년을 다른 환경에서 살다가 결혼한다고 둘이 하나 되기가 쉬울까. 요즘 쉽게 얘기하는 성격 차이, 기타 여러 가지 문제로 결국 이혼을 하지만 이혼은 부부가 하나 되기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다.
참 아름다운 부부란 글이 한 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나로 말미암아 더 행복하기를 바라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배려와 칭찬을 한다. 나의 실수로 사랑하는 배우자가 일평생 고통과 의심의 질병에 빠지도록 하지 않는다. 내일 서로 얼싸안고 기뻐할 빛나고 값진 진주 같은 사랑과 행복을 내다보며 오늘은 잘도 참아낸다. 애교, 유머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자주 하며 때로는 억지로 들어주며 말벗이 되어준다 등이었다. 실은 쉽지 않은 얘기지만, 모든 걸 다 어렵다고만 하면 쉬운 것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다시 태어나도 지금의 배우자와 결혼하겠느냐는 물음의 조사가 있었다. 90%가 넘는 사람들이 아니라고 대답했다. 어느 목사가 같은 질문을 교인들에게 했다. 그런 사람이 있으면 손을 들어보시라고 하고 두루 살폈다. 모두가 손을 들지 않았는데 어떤 할머니가 손을 들었다. “그래요. 그렇게 사랑이 깊었습니까?” 하고 목사가 다시 물었다. 그랬더니 할머니의 대답은 “다, 그놈이 그놈이여. 그래도 길들여진 놈이 낫지” 라는 명답을 남겼다.
수십 년 전 얘기지만 이런 유머가 있었다. 제시된 단어를 상대에게 설명해서 알아맞히는 스피드 게임이었다. 시골에서 올라온 장년부부가 출연했다. 60대 남편이 카드를 뽑았더니 ‘천생연분’이라고 적혀 있었다. “임자, 임자하고 나 사이를 뭐라고 하지?” 부인은 대뜸 ‘웬수’라고 대답했다. “아니, 넉 자로 된 거” “평생웬수?”
<제주매일 객원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