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담벼락-김광수
지난 삶을 생각해 본다. 내용 부족해 너무 가볍다. 바람에 떠돌다 혼침할 것 같다. 바람에 날려버리면 어떻게 하나. 그 바람이 와서 안정시켜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길을 헤매게 된다. 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통사정 하라면 하겠다. 빠른 세월도 느림보 되어보시라고 그리 하겠다.
한 사람 골목길을 걸어간다. 또 한 사람 걸어간다. 나도 걸어간다. 주변 환경을 보며 걸어간다. 사람들은 건강을 바라는 꿈, 일터에서 이룰 꿈을 갖고 걸어간다. 길은 꿈을 이루게 하는 지혜를 줄 것이다.
이 저런 생각을 하고 가는데 그 사람들은 안 보인다. 집에 들어가 버린 것일까. 사람이 없으니 길은 외롭다. 쓸쓸하다.
제주시 아라동 어느 따뜻한 담벼락에 섰다. 짙은 초록색 딸기를 시원하게 바라본다. 그들은 이 추운 겨울에 떨고 있다. 괴로움을 이겨내면 꽃 피고 열매 맺어 빨갛게 익을 것이다. 오월 중순경에는 아라주는 딸기 직거래 장터에서 딸기를 사 먹어주자. 그 생각하니 마음은 따뜻하다.
추운 겨울에는 뭐니 뭐니 해도 햇볕 내리 쬐는 따뜻한 담벼락이 최고였다.
친구들과 하고 싶은 말 모두 털어놓으려 입을 열어 말하기 시작하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제기차기 딱지치기 팽이치기 땅따먹기 하며 해 지는 줄 모르기도 하였다.
지금도 추운 날 길가 양쪽에 방품림 우거진 사이를 걸어 갈 때는 온몸이 으스스 떨려 움츠러든다. 따뜻하였던 그 담벼락 생각이 난다.
그 때 보았던 하늘의 뜬구름, 아무런 뜻 없는 형태로 보이지 않고 눈길을 끌게 하였던 뜬구름, 그 구름들을 보며 그들처럼 걷고 뛰며 다닌 길은 평탄한 길, 굴곡 심한 길이었다. 신발 많이 닳았다. 뛰고 뛰었던 여정은 나름대로 마음으로 읽어본다.
1959년 사라호 태풍 때 있었던 일로 아버지 생각도 새삼 떠오른다.
아버지는 들썩 들썩 하늘로 날아갈 것 같던 초가지붕에 올라 새끼줄로 단단히 묶으며 따뜻한 담벼락이었던 돌담을 가져다 짓눌렀다. 아버지의 손과 새끼줄과 돌담의 힘으로 그 태풍을 물리쳤다.
아버지의 손, 그 새끼줄, 돌담은 막강한 태풍을 이겨낸 영웅이었다. 세월이 엄청 많이 흘렀어도 지워지지 않는다. 너무도 가슴 찡하게 내 가슴에 아버지 모습이 각인되었기 때문이다.
따뜻한 담벼락에 서서 지난 일을 생각하니 그동안 무심히 지내온데 대해 미안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요즘 따뜻한 담벼락엔 아이들이 모이지 않는다. 어른들도 그렇다. 따뜻한 담벼락도 혼자다.
우연히 떠오른 따뜻한 담벼락의 향수, 그는 나를 나는 그를 보며 새로운 모습과 느낌을 발견한다. 그동안 너무 소원했다. 시대의 변화 때문이었다. 과학문명의 발달은 우리에게 밖에서 한가하게 놀 수 있는 여유를 주지 않았다.
따뜻한 담벼락/ 그야말로 명당자리/ 학동들 언 손 호호 불며 모여들어/ 머물고 떠났던 편안한 자리/ 시대변화는 냉정하게 강물로 흘러/ 큰 고비 작은 고비 수도 없이 겪으면서/ 찾아 볼 겨를 없이 세월 다 보내고/ 옛 일을 생각하는 그 자리/ 천만 가지 자리 형태 중/ 제일 좋은 자리 따뜻한 담벼락/
이제 나는 마음만이라도 따뜻한 담벼락에 귀촌하여 정착하고 싶다. 옛날 그 추억 하나 씩이라도 들추며 살아가는 재미도 그만일 테니.
나를 향해 달려오는 생활 속의 웃음과 눈물, 행복한 표정 잘 읽겠다. 웃음과 눈물은 우애 있는 형제. 기뻐할 때나 슬퍼할 때나 늘 함께 있어주는 다정한 형제. 아름다운 사회 속으로, 아름답고 싱그러운 자연 속으로, 늘 함께하여 즐겁고 보람된 나날이 되면 좋을 것이다.
김 광 수 시인/초등학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