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약(公約)과 공약(空約)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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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은 거짓말쟁이다. 풍화(風化)되지 않은 거친 논리로는 그렇다. 공약(公約) 이행여부와 관련해서다.
선거 때는 제 살이라도 베줄 듯이 약속(公約) 해놓고선 당선 된 후는 향용 “언제 그랬느냐”는 식이다. 공수표(空約)로 끝나기 일쑤다. ‘공약(公約)은 공약(空約)’이라는 등식(等式)이 가능해지는 이유다.
공약은 국민 또는 유권자와 맺는 시행 담보 계약이나 다름없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계약위반이다. 국민에 대한 기만이고 유권자를 우롱하는 것이다.
비록 정치인의 거짓공약 남발이나 공약 불이행이 실정법상 사법적 처벌대상에서 벗어난다고 해도 그것으로 정치 도의적 책임이나 정당성까지 담보되는 것은 아니다. 상처 입은 시민의 자존심에 의지하여 자유분방한 대중적 상상력을 동원한다면 ‘엎드려뻗쳐’ 시켜 난장(亂杖) 칠 일이다.
그러기에 ‘정치인의 거짓 공약’은 힐난(詰難)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어조는 격하고 표현은 거침이 없을 터이다. “거짓말만큼 비열하고 가련하고 경멸스러운 일이 없다”는 ‘T 제퍼슨‘의 일갈(一喝)은 그래서 ’거짓공약 정치인’에게는 듣기 거북한 아포리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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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기초자치부활 도민운동 본부’는 우근민 지사에게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고 했다. 공약 불이행에 대한 책임추궁이다. 우지사는 지난 2010년 도지사 선거 때 ‘기초자치단체 부활’을 핵심공약으로 내 걸었다. 선거 후 이것으로 재미 좀 봤다는 말도 있었다.
그러나 현실적 적합성이 부족하고 ‘실현 가능성 제로의 헛공약’이라는 비판이 많았다. 이를 알면서도 표만을 의식한 전형적 포퓰리즘 공약이라는 것이다.
우선 ‘기초부활 공약’은 겨우 시행 4년차인 제주특별자치도제를 부정하는 것이었다. 2006년 출범한 제주특별자치도는 도민투표로 결정된 도내 ‘4개 기초자치단체 폐지’가 전제된 것이었다. 따라서 ‘기초부활 공약’은 논의 자체가 적절치 않았다. 시기상조(時機尙早)이기도 했다.
공약당시 정치권은 시.군.구 통합과 광역화를 골자로 한 지방행정체제 개편을 논의하고 있었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시범 케이스였다. 2010년 4월 27일 국회지방행정체제개편 특위는 여야 만장일치로 관련 특별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런 상황에서 ‘기초부활 공약’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정부와 여.야 정당이 전폭적 지지와 지원이 없으면 불가능할 일이다. ‘공약 실천 제로’의 상황인식은 여기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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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사가 모를 리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기초단체 부활’을 공약으로 내건 것이다. 당선 후인 같은 해 7월5일에는 기초부활 로드맵까지 공개했다. 2011년 자치모형 개발과 도의회 동의 또는 주민투표 실시, 2012년 제주특별법 개정, 2013년 기초자치 준비단 구성, 2014년 동시 지방선거 때 기초단체장을 주민직선으로 뽑는다는 것이었다. 헛발질이 무모하고 용감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래놓고 언제부터인가 소리 없이 꼬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공약폐기 수순을 밟고 있다는 소리도 들린다. 변비로 끙끙대다가 슬그머니 바지를 올려버린 꼴이다.
애초부터 안 될 공약이었다. 이를 알고도 공약했다면 ‘참 나쁜 사람‘이다. 도민을 속였기 때문이다. 모르고 했다면 무식의 소치다. 리더로서의 자격과 자질이 의심스럽다.
어찌했건 ‘기초 부활’은 그것의 필요성이나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탐욕의 대상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도지사에게 “물러나라“는 된 소리가 나올 만 하다.
한국메니페스토실천본부가 지난해 8월 발표했던 우지사 공약 이행율은 전국 16개 시도지사중 꼴찌였다. 종합평가 결과는 4등급 중 가장 낮은 C 등급이었다. 이행을 마친 공약은 단 3개, 이행율 1.5%였다. 38.9%에서 62.9%까지인 타시도지사와 비교하면 한숨이 저절로 나온다. 정말 한심할 노릇이다.
미국의 역사학자 하워드 진(1922~2010)은 생전에 “불의한 리더를 무너뜨리는 데 시민행동이 요구 된다”고 했다. 시사(示唆)하는 바 크다. 순박한 도민들, 착한 유권자들, 언제까지 ‘불의한 공약’에 농락당할 것인가. 답은 이미 나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