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멋과 독-김찬집
서양 속담에 ‘멋있는 유머와 날카로운 유머(good of keen humor)라는 말이 있다. 유머는 따뜻한 애정이며 신뢰의 힘이다. 인간은 유머를 통해 신뢰를 쌓을 수 있지만, 거꾸로 날칼로운 말로는 신뢰를 쌓을 수 없다. 유머는 삶의 힘이고, 날카로운 말은 삶의 독이다 요즘 유머보다 날카로운 신조어들이 마구 쏟아져 나오고 있다. 낯설어서 일반적으로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단어나 표현법으로 ‘외계어’로 들리기도 하고. 귀화한 외래어인 경우도 있다. 기존의 용어를 새로운 의미로 사용하는 것도 있고, 아예 새롭게 만든 것도 있다. 과거에는 주로 또래집단 내의 은밀한 소통수단으로서 은어(隱語)나 비어(卑語)에 많았는데, 근래에는 인터넷과 이동 통신 기기의 보급에 따른 속어(俗語) 수준의 신조어가 많아졌다. 신조어는 그 말이 만들어진 시대의 사회상을 반영한다. 따라서 기존의 언어 체계에 대립되는 언어 파괴적인 것이라고 부정적으로만 볼 수 없는 것도 사실이지만. 오히려 대중들이 널리 받아들여 생명력을 인정받으면 기존의 언어 체계에 자연스럽게 수용될 뿐만 아니라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면도 없지 않다.
그러나 인터넷과 관련된 새로운 신조어는 그 수를 다 헤아릴 수 없다. ㅋㅋ, ㅎㅎ, ㅠㅠ처럼 자음과 모음만을 단순하게 사용하여 감정이나 기분의 표현을 하는가 하면,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완소(완전 소중한), 솔까말(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넘사벽(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금사빠(금방 사랑에 빠지는 사람)처럼 줄임말도 많이 쓰인다.
또래집단의 동질감이나 소속감의 유지를 위해, 휴대 전화의 제한된 바이트 내에서 가능한 한 많은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즉 의사소통에 있어서의 편이성 및 시간과 요금의 절약을 위해 언어가 가진 본래의 의미를 훼손하지 않은 범위에서 줄여 애교 있게 사용하는 경우야 누가 뭐라 할 것인가.
헌데 그 어원도 의미도 불투명한 아리송한 언어들이 범람하는 게 문제다. 안습(눈물겹다), 개드립(폄하의 의미를 가진 ‘개’가 붙어 적절치 못한 애드리브 ad lib)이며 오덕후는 ‘마니아’라는 뜻의 일본어 오타쿠<おた>에서 유래해 어떤 물건이나 취미에 강하게 집착하는 사람, 품절남(인기가 많지만 이미 애인이 생긴 남자), 미존(미친 존재감), 된장녀(분수에 맞지 않게 자기 과시적인 소비를 즐기는 사람) 같은 단어 말이다. 그런 와중에 대학교수로 있는 한 지식인이 자기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에 대해 인터넷에 ‘듣보잡’(듣지도 보지도 못한 잡놈)이란 천박한 언어를 사용해 물의를 일으킨 적도 있다.
특히 ‘된장녀’는 근년에 야후 코리아가 집계한 인터넷 신조어와 유행어 순위 1위에 올라 지금까지도 널리 쓰이고 있다. 왜 하필 경제적인 능력이 없으면서도 해외 명품을 선호해 의존적인 여성에게 우리 고유의 자랑스러운 식품인 된장을 붙여 써 부정적 이미지로 사용했는지 모르겠다. ‘아무리 명품으로 치장을 해 보아도 결국 된장 냄새 풍기는 여자’라는 비아냥이 담긴 것일까. 신조어의 파급은 대중 매체, 특히 TV에서 여러 사람의 사회자를 세워 자유로운 토크쇼(talk show)를 진행하는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확산되는 것 이라고 전문기관에서는 분석하고 있다. 젊은이들의 우상인 연예인들의 즉흥적이고 흥미 위주의 발언들이 이러한 언어의 오남용을 부추기고 있는 게 아닌지 우려된다. ‘우리 말 겨루기’ 같은 좋은 프로그램을 확장하여 언어의 오염을 막고 아름다운 우리말을 널리 펼쳐서 우리말을 지켰으면 한다.이와 병행하여 유머로우스한 말도 권장했으면 한다. 예를 들으면 “꼭 담배를 피우려면 숨을 내쉬지 마세요.” 공공건물에 이런 말을 써 놓으면 금연 스티커를 곳곳에 붙이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일 것 같다. “담배를 피우고 싶은 손님은 테라스로 나가십시오.”-미국 사우스웨스트 항공의 기내방송 문안이라는 자료를 본 기억이 있다. 이 항공사에 전화를 걸면 “담당자와 30초 이상 연결되지 않거든 8번을 누르세요. 그렇다고 빨리 연결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기분은 좋아질 겁니다”라는 메시지가 나온다고 한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카운터로 갖고 오세요. 미소로 바꿔 드리겠습니다.”라고 써 붙인 어느 음식점과 비슷하다.
유머 비즈니스’라는 책(밥 로스 저)에는 유머의 AT&T원칙이 나온다. 내용의 타당성(Appropriate), 시기의 적절성(Timely), 듣는 이들의 취향과 특성에 맞을 것(Tasteful) 등이다. “스커트와 스피치는 짧을수록 좋다니 그만하겠습니다.”하고 서둘러 연설을 마쳤다면 듣는 사람은 신선 할 것이다
.말과 글은 문화 속에서 태어나고 문화 속에서 자라나는 나무라고 말한다. 그래서 우리말과 우리글은 주인인 우리가 아끼고 사랑하며 풍요롭게 키워 의미를 넓혀 가야 하지 않을까. 날만 새면 신조어가 늘어가는 세태를 따라 그것에 맛들인 우리의 젊은이들이 우리말의 진정한 아름다움과 고유의 가치를 잊어버리게 될까 걱정이다. 언어의 순화와 우리글의 보다 긍정적 진화에 관심을 기울일 때가 지금이라고 생각한다.
김 찬 집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