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벌 과 질투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경쟁자를 가지고 살아간다. 직장인은 승진의 경쟁자를, 치킨집 주인은 옆 치킨상점과 경쟁해야 살아간다. 학생들도 실력경쟁을 해야 일류 학교로 연결되고 성공에서 앞서 갈 수 있다는 경쟁심을 갖는다. 또 친한 사이에서도 뜻이 잘 맞는 단짝이 있는 것처럼 사사건건 신경을 거슬리게 만드는 맞수가 있게 마련이다. 그 대상을 우리는 라이벌이라고 부른다. 라이벌을 경쟁의 대상이라 하여 적대시하거나 질투하는 우리들이다. 뿐만 아니라 라이벌과의 경쟁이 싫다고 하여 세속적인 삶을 등지고 산으로 들어가 스님으로서 불경공부를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라이벌은 인간과 인생을 진화하게 만드는 훌륭한 자극제이고 삶의 원동력이라고 생각하는 이는 많지 않다. 라이벌과의 무한 경쟁이 때로는 고통스러울 수도 있지만 인간의 영혼을 진화시키기 위해 그만큼 한 훌륭한 학습 프로그램도 없는 것이다. 라이벌이 없는 사람은 꼴찌 인생을 사는 것이고, 경쟁이 싫다고 세상을 등진 은둔자는 도태된 삶을 사는 것뿐이다. 그러니 라이벌을 두려워하거나 미워하지 말고 훌륭한 동반으로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왜냐하면. 라이벌은 서로를 비춰주는 각성의 거울이기 때문이다.
그러지만 라이벌에게 한없는 질투와 시샘을 하는 우리들이다.
라이벌에게 느끼는 여러 가지 감정 가운데서 오직 질투만이 마음을 흐리게 하고 적의를 느끼게 하는 것으로 주목되어 왔다. 이것들은 모두 격렬한 욕망을 지니고 있다. 이것들은 쉽사리 상상과 암시 속에다 자기 자신의 윤곽을 짠다. 우리는 성경에서 질투가 ‘악의의 눈’이라고 불리어지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주로 어떤 사람이 타인을 질투하는 경향이 있는가, 어떤 사람이 가장 질투를 받게 되는가.자기 자신이 아무런 덕성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언제나 타인의 덕성을 질투한다. 왜냐하면 사람의 마음은 자기 자신의 선이나 타인의 악을 먹고 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전자를 갖지 못한 사람은 후자를 먹이로 삼는다. 그리고 타인의 덕성에 도달할 희망이 없는 사람은 타인의 행운을 누름으로써 대등(對等)해 지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경박과 허영 때문에 지나치게 많은 방면에서 탁월하고자 원하는 사람은 항상 질투심이 많다고 한다. 그들에게는 언제나 질투거리가 없을 때가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여러 가지 일 가운데서 어느 한 가지 방면에 있어서는 그들을 능가하는 자가 반드시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로마 시대 아드리안 황제의 성격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이 탁월하고자 원하는 것이라면, 시인이고 화가이고 기예가(技藝家)이고 간에 굉장히 질투하였다는 의미다.많건? 적건 질투를 당하는 사람들에 관해서 생각해 보면, 먼저 탁월한 덕성을 지닌 사람은 그가 승진하였을 때 질투 받는 일이 비교적 드물다. 그들의 행운은 그들에게 당연한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아무도 평소에 베푼 덕성에 대한 상환으로 얻은 영광을 질투하지 않는다. 삶은 상호(相好exchange)이기 때문이다. 질투는 언제나 자기 자신과 비교하는 것으로 연결되어 있다. 비교가 없는 데에는 질투도 없다. 그러므로 국왕을 질투하는 것은 국왕뿐이다. 명예를 얻는 데 커다란 노고나 걱정이나 위험 등을 겪은 사람은 질투의 대상이 덜 된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그가 고생해서 그 명예를 얻게 된 것이라 생각하고 때로는 그를 측은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측은은 언제나 질투심을 치료해 준다. 그러므로 요즘 정치가들이 높은 지위를 누리면서도 항상, ‘아아, 괴롭도다. 고 탄식하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있다. 그들은 정말 그렇게 느끼는 것이 아니라 다만 질투의 칼날을 무디게 하는 것뿐일 수 있다.
특히 자기의 행운의 위대함을 오만하게 자랑하는 태도는 가장 질투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사적인 질투일 경우에는 아무것도 없지만 공적인 질투에는 어느 정도 순기능이 있다. 왜냐하면 질투는 위대한 사람을 견제하는 굴레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공적인 질투는 라틴어로는 ‘악의’라는 뜻이며, 현대적 의미로서는 ‘불만’이라고 한다. 우리는 질투의 감정에 관해서 일반적으로 이렇게 인식하고 있다. 질투는 모든 감정 가운데서 가장 끈덕지고 지속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다른 감정들은 가끔씩 밖에 기회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질투는 휴일이 없다는 명구(名句)가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항상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질투는 사람을 수척케 한다는 것은 이미 학문적으로 보편적 이론이다. 다른 감정들은 그렇지가 않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지속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질투는 가장 비열하고 타락된 감정이다. 그 때문에 그것은 악마의 고유한 특성이다. 악마가 ‘사람들이 잠자는 동안에 보리밭에 검질(잡초) 뿌리는 보리에 대해 질투 많은 것’ 이라고 불리고 있듯 질투는 항상 교활하여 밤중에 돌아다니면서 보리와 같이 좋은 것을 해치는 일을 한다는 것이다. 라이벌은 자극제이고 질투는 독극물인 것이다.
김찬집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