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수선한 설날 政談

2005-02-11     강정만 편집국장

설날은 역시 차려진 음식만큼이나 정담(情談)이 풍부했다. 형제자매들이 모여서 차례를 지내고 세배를 하며 오순도순 그 동안의 살아온 얘기들로 하루를 보내는 정겨움은 현대적 표현으로 ‘스트레스에서의 완전해방’이었다.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 맺혀 있던 감정을 발산하는 것이라면 친척들이 모여 수다 떠는 것만큼 이에 딱 맞는 처방이 있겠는가?

수다(數多)는 서로 정을 나누는 정취를 넘어 정담(政談)까지로 이어진다. 워낙 정치에 관심이 유별나게 많은 민족이라 그러하겠지만, 요즘 도하(都下)언론들이 아직 3년이나 남은 대통령 선거 후보 인기도 여론조사 발표를 하는 분위기와도 무관하지 않을 터다. 지방신문에 ‘선거관리위원회가 설날 선거법 위반행위를 강력 단속하기로 했다’는 기사 또한 정담(政談)의 소재를 제공하기도 한다. 내년 6월 치러질 지방선거가 앞으로 1년4개월 정도를 남겨두고 있으니 이래저래 설날 정담(情談)이 정담(政談)으로 만발하는 이유를 알만 하다.

제주국제자유도시 개발센터 이사장 공모, 1년 4개월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 중 단체장 선거, 3-1절 특별사면 얘기들은 설날 화제로는 우선순위를 차지했다. 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이사장에 몇 명이 응모했고, 이 중 누가 어느 당의 지원을 받고 있어 유력하고 누구는 막판까지 눈치 보다가 그만뒀다는 소문들이 방안 난로 주변을 달구었다. 

情談이 政談으로 무르익는 이유

사실 그렇다. 제주국제자유도시 개발센터 이사장 자리가 어떤 자리인가? 제주를 국제자유도시로 개발하겠다고 해 놓고선 서울에 본사를 두고 이사장 자리도 서울의 인사가 먹어버린, 제주도민들로서는 의문투성이 자리가 아니던가? 이 자리에 앉을 사람은 누구이며, 그가 도민인지 아닌지, 국제자유도시특별법을 집행하고 있는 제주도지사와는 어떤 관계를 가질 것인가에 도민들의 관심을 표명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서로 안부를 묻거나 동네 소식을 전하는 정담(情談)은 동쪽의 얘기를 하다가 서쪽으로 90도 각도의 방향 선회가 되지만, 정담(政談)은 그렇게 되지 않는다. 정담(政談)의 소재 하나 하나가 별개의 성격을 띠는 것이 아니라 사슬처럼 얽혀져 있는 것처럼 특성을 가지기 때문이리라. 이야기는 국제자유도시 이사장 자리 그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장차 있을 지방선거의 도지사 후보로 이어지면서 지난해 선거법 위반으로 피선거권이 박탈당한 인사들의 특별사면 얘기까지가 한 줄거리로 짜여지면서 흥미는 진진해질 수밖에 없다.

 설령 그것이 사실 확인이 당장 될 수 없는 ‘카더라 방송’의 지나지 않는 얘기라 하더라도, 누구나 귀속에 담아 듣고 싶은 얘기와 흘러버릴 얘기가 있을 것이지만, 정작 사면이니 어쩌니 하는 얘기에는 귀를 씻고 싶어진다. 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이사장 자리에 지난해 도지사에 출마했고, 내년 다시 출마하는 것으로 얘기되고 있는 인사가 지원했고, 지난해 선거법 위반으로 낙마한 인사는 3-1절 특별사면을 받아 도지사에 다시 출마하고, 역시 지난해 4-15 총선에서 낙선한 인사까지 도지사로 나온다는 얘기를 듣다보면 “권력이라는 것이 그렇게 좋았을까”하는 의문을 가지는 것은 좀 점잖은 쪽이다.

 狐假虎威했던 무리들과 피해자들

권력의 자리에서 온갖 ‘단물’을 맛 볼대로 맛봤음직한 인사들이 다시 권력에의 향수에 젖어 발버둥치는 꼴에는 애처롭기 그지없을 뿐 “그거 한번 해 볼 만 하다”는 생각은 털끝만큼도 들지 않는다. 이들은 기부를 잘 받고, 입만 잘 놀리면 됐던 구태의 정치에 미련을 두고 있을지 모르나 이제 그런 시대는 종친지가 꽤 오래됐다.

이 정도가 되면 “나만한 사람 있으면 나오라고 해” 식의 동키호테적 ‘착각’마저 읽게 된다.  권력에 취해 앞이 보이지 않는 이들의 깨달음이 필요한데, 그 개안(開眼)은 맨 먼저 제주도에는 현재 30대에서 50대 초반의 젊고 짱짱한 인재들이 줄을 서 있는 모습을 보는 일에서부터 시작할 일이다.

제주도에 인재가 없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젊은 인재들을 가로 막고 서 있었다는 것을 깨달을 때가 됐다. 몰염치로 시도 때도 없이 다가올 듯한 권력에 기웃거릴 것이 아니라, 자신이 누렸던 권력의 시간과 그 밑에서 호가호위(狐假虎威) 했던 무리들, 그  무리들의 뛰노는 중원(中原)에서 아웃 사이더로 추방당해 마치 ‘유배자’처럼 분을 삭이며 살아야 했던 피해자들을 곰곰이 생각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