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홍준과 하멜, 그리고 도 문화재 행정의 현 주소

2012-10-16     제주매일

최근 유홍준 교수가 새 책을 펴냈다. 일명 제주허씨를 위한 제주학 안내서란다. 목차를 훑어보다 눈에 띄는 제목이 있어 얼른 해당 페이지를 펼쳤다. ‘하멜상선전시관’에 관한 내용인데, 여기에 하멜표착지 논란내용이 쓰여있어 재빠르게 읽어나갔다. 문화재청장까지 지낸 유홍준 교수의 하멜표착지 논란에 대한 의견이 내심 궁금해서였다.

유 교수는 그간 하멜표착지 논란이 촉발된 이익태의 「지영록」이야기와 하멜 표착 350주년 기념 특별전을 준비하면서 학예사들이 하멜의 항로와 표착지 탐색을 위해 겪은 경험담을 풀어내고 있었다. 그리곤 「지영록」에 기록된 ‘대야수’, 그리고 학예사들이 추정한 하멜표착지가 현재의 수월봉 부근과 차귀도 일것이라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으며, 신도2리 향민회에서 ‘하멜 표착지 확인 및 표지석 설치’를 도에 요청한 사실까지 소개하고 있었다.
 
필자가 하멜표착지와 관련해서 관심을 갖는 데는 이유가 있다. 하멜표착지로 언급되고 있는 지역이 바로 대정읍 신도2리이기 때문이다. 용머리 해안에 하멜상선 전시관을 개관할 당시인 2003년에도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표착지 확인에 대해서 행정은 복지부동이다. 하멜 표착지 확인 검증에 대한 끊임없는 요청에도 불구하고 서귀포시나 도의 문화재 담당부서는 앞으로 고증자문을 실시하고 장기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일관해오고 있다. 일련의 어떤 조치나 계획도 없이 시간만 질질 끌고 있어 답답할 뿐이다.

이러한 행정의 외면과 무관심에 지칠 만도 하지만 신도리민들과 하멜기념사업회에서는 올해로 359주년을 맞는 하멜표류 난파 희생자 추모를 위한 헌다제를 신도2리 도구리알 해안에서 개최하였다. 제주에서 목숨을 잃은 하멜일행들의 고혼을 달래주는 한국인들의 아름다운 마음을 하멜일행의 고국인 네덜란드에 전하는 행사이다. 한국과 네덜란드의 전통적인 우호관계의 뿌리가 하멜표류기를 통해 이곳 제주의 대정읍 신도2리에서 출발하고 있는 것이다.

예산 때문에 실물크기의 80퍼센트로 재현되었다는 하멜선박이 용머리 해안에 이미 세워졌기 때문에 어쩌겠는가라고 한탄하는 유홍준 교수의 탄식은 그동안 하멜표착지의 제대로운 고증을 줄기차게 요구해왔던 신도2리 주민들의 모습과 새삼 오버랩된다. 전국 각지에서 유홍준의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돌하르방 어디 감수광」 제주편을 읽고 있을 많은 독자와 잠재 관광객들에게 현재 제주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화재 행정의 수준과 모습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부끄러운 우리들의 자화상인 것이다. 도의 문화재 담당 공무원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제주도의회 의원 허창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