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성 아닌, 紙質로 뽑은 ‘설계 공모’

2012-08-01     제주매일

 만화(漫畵)세계에서나 있음직한 희한한 일이 벌어져 날이 갈수록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제주도가 신축 복합체육관 설계공모에서, 작품성 1위인 작품을 밀어내고 2위 작품을 1위로 올려놓았기 때문이다.

 작품성이 우수한 1위를 2위로 쫓아버린 이유가 가관(可觀)이다. 설계도면도 아닌, 설계 설명서 지질(紙質)이 감점 대상이라는 것이다.

 과문의 탓인지는 모르지만 설계도면 지질도 아닌, 설계 설명서의 지질 때문에 작품성이 우수한 작품이 차 순위 작품에 밀려 탈락했다는 얘기는 아직 들어 본적이 없다.

 물론 제주도 당국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국토해양부의 ‘건축설계경기 운영지침 13조’에 따랐을 뿐이라는 것이다. 즉 “이 규정에 따라 세부 감점 기준이 마련됐고, 심사위원회가 이를 최종 결정해 적용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제주도의 이런 해명은 2위로 밀려난 업체로부터 더 큰 반발을 사고 있다. 이 업체는 국토해양부 지침 중 13조가 아니라 8조를 근거로 들고 있다. 발주처가 설계 지침서를 작성하는 경우 설계자가 고려하거나 준수해야 할 사항을 구체적으로 빠짐없이 기술해야지,  자의적으로 설계공모 조건을 설정토록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제주도가 이 규정을 어겼다는 주장이다.

 문제는 관련 규정 해석의 옳고 그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본질인 작품성보다 설명서의 지질을 우선시했다는 데 있다. 작품성에서 2개 작품 이상이 동점인 경우는 지질을 감점 혹은 가점 기준으로 삼아 순위를 결정하는 것은 이해가 간다. 이번 경우는 그게 아니다. 엄연히 작품성에서 1위를 차지한 작품이 설명서 지질을 문제 삼아 2위로 내친 것은 공평성에서 재비 뽑기만도 못한 처사다.

 훌륭한 건축물이 예술품인 것처럼, 훌륭한 설계도를 작성하는 것 역시 예술 행위이다. 따라서 제주복합체육관 설계를 공모하는 것도 예술작품을 공모하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때문에 작품성을 위주로 설계도를 선정해야 한다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기준이다. 그럼에도 1위 작품을 설명서 지질 문제로 2위로 쫓아버린 것은 만화(漫畵)다. 이번 일을 백지화 하고 재공모하는 것이 사리에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