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벌써”
아니 벌써, 을유년(乙酉年) 새해가 시작된지 보름을 넘겨 스무날이 되고 있다. 벌써 일년 365일의 19분의 1일 까먹는 셈이다.
그래서 ‘아니 벌써’라는 글 머리는 2005년의 꿈을 제대로 한 번 시작해 보지도 못하고 허송한 세월의 덧없음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아무런 한 일도 없이 보낸 2005년의 20일을 생각하면 너무도 빠른 삶의 흐름을 더욱 안타깝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달아나는 세월을 붙잡아 둘 수만 있다면 못 이룰 꿈이 없을 것이라는 사람들의 장담은 언제나 미완의 꿈일 수밖에 없다.
▶한때 푸에르토리코 대학에서 강의를 했다던 지질학자 ‘졸지오ㆍ파셀라' 박사는 3억년전에는 1년이 390일이었다고 주장한 바 있었다. 지금보다 1년이 25일이나 더 많은 셈이다.
‘졸지오’박사의 주장은 그 때에는 하루가 24시간이 아니라 22일이라는 전제 아래서 내린 이론이었다.
하루의 시간에서 두 시간을 덜어내든 말든 그래도 빠르게 흘러 가버린 새해 20일을 생각하면 일년이 390일이었으면 좋겠다는 속절없는 아쉬움을 지울 수가 없다.
불타(佛陀)의 세계에서는 세월의 흐름을 찰나(刹那)와 겁(劫)의 두 단위로 나눈다고 한다. 찰나란 눈 깜짝할 사이를 말한다. 손가락 한번 튕기는 사이에 65찰나가 지나간다는 것이다. 찰나의 순간이 얼마나 짧은 것인가를 말해주는 것이다.
이에 비해 ‘겁(劫)’은 아주 긴 시간이다. 사방 두께 40리나 되는 큰 바위에 1백년에 한번씩 천사가 내려와 비단 옷 자락으로 슬쩍 한 번 스친다.
그 스치는 기운으로 바위가 흔적도 없이 마멸될 때까지가 일겁(一劫)이다.
이 같은 아득한 영겁에 비해 눈 깜짝할 사이인 찰나의 인생을 생각하면 저절로 한숨이 나온다.
▶그 찰나의 인생을 나만 살아보겠다고 남을 속이고 시기하고 미워하며 아둥바둥 아우성치고 있다니 도대체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싱거운 생각만 들뿐이다.
그러나 어쩌랴, 찰나의 순간에도 어떤 형태로든 삶은 엮어지게 마련인 것을. 순간 순간의 삶 속에는 희노애락이 있듯이 절망도 있고 희망도 있게 마련이다.
이같은 삶 속에서 찰나의 선택은 바로 희망이다. 벌써 2005년의 19분의 1을 보내며 세월의 속절없음을 안타까워하면서도 새해 아침에 세웠던 꿈을 버리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가는 세월을 붙잡아 둘수는 없다. 세월을 붙잡아 둘수 없다는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찰나의 순간이라도 아껴 희망을 엮을 수만 있다면 인생은 그렇게 덧없는 것 일수만은 없다.
이것이 ‘아니 벌써’라는 빠른시간의 놀라움 속에 을유년 새해의 20일을 보내고 있지만 실망하거나 꿈과 희망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당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