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서귀포를 망치고 있는가?
처음부터 일을 망치려고 하지 않았지만, 하다 보면 그렇게 되는 수가 왕왕 있는 것이 인간사일 게다. “망신하려면 두부 먹다가 이가 빠지더라”고 서귀포시의 부실 도시락 파문이야말로 일단 이런 경우일 것으로 해두자. 지금까지 그런 전례가 없었다는 점에서 그렇고 “어찌 소외계층인 결식아동을 대상으로 그런 일을 할 수 있겠는가" 하는 점에서도 실수로 보는데 큰 잘못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것이 너무 큰데다 서귀포시민의 수치감을 줄 수 있을 정도로 충격적이어서 그저 단순한 게 아니라 서귀포시 행정에서 빚어지고 있는, 무엇인가 엇섞어진 ‘현상(現象)의 표징(表徵)’일 수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천혜의 자연환경의 고장. 온화한 기후와 따뜻한 인심. 조명암의 시를 남인수가 들려주는 낭만의 ‘서귀포칠십리’. 서귀포는 이 나라 국민들의 마음속에 이렇게 정감 어린 도시로 심어져있다. 요즘 다시 생각해보면, 인구가 8만 정도여서 시세(市勢)가 약해 천혜의 경관과 사람들이 읊어마지 않는 낭만이라는 것만 가지고는 밥 먹여 줄 일은 아니었으되, 그나마 이런 것들이나마 있어 서귀포가 그런 대로 관광도시로서의 품은 팔 고 있지 않나 싶다.
백천간두에 선 좌절과 냉소의 도시
서귀포는 허나 지금 관광도시로서의 이미지보다는 시민들의 먹고살기가 백척간두에 있는 ‘죽음의 도시’가 되고 있다는데 심각성이 있다. 이미 언론들이 묘사한 것처럼 서귀포는 밤 9시가 되면 상가가 철시하고 불이 꺼지는 껌껌한 도시로 변해 버린 지 오래다. 전체 시민의 30%인, 감귤에 의존하고 있는 농가들이 그 동안 감귤가격의 하락으로 생활에 허덕인 터라 빚더미에 올라 있고, 토박이 주민들이 등져 떠나고 있다. 좌절과 냉소주의로 서귀포의 긴 그림자가 드리워진지도 수 삼 년이 된다. 이렇게 처참한 지경까지 간 데는 애초 IMF 라는 ‘직격탄’이 빌미가 됐었음은 새삼 얘기할 필요가 없다.
서귀포는 IMF 이후 날로 더 해 가는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민선자치 이후 증폭되고 있는 시정과 시민사이 얽혀진 갈등과 분열이 새로운 모습을 띠거나 더 까탈스럽게 되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자리하고 있다. 서귀포시의 정책으로 인한 자치단체와 시민 사이의 갈등, 시민 대(對) 시민의 불목과 불화, 이를 해소해야할 시정의 새로운 갈등 제공, 다시 악순환 되는 갈등과 분열 등―오늘 우리가 볼 수 있는 서귀포의 ‘삽화’는 이처럼 황량하다.
지역 주민들의 거센 반발을 샀던 강정유원지에 해안도로를 폐지해 골프장을 건설해주겠다는 시의 방침은 시가 순전히 업자의 편을 손들어 준 것뿐이다. 시가 지역주민의 인프라인 해안도로를 더 건설해주지 못할 망정 한 업체의 골프장을 짓도록 하면서 있는 것 마저 폐지하겠다고 한 발상이 과연 서귀포를 흥하게 하는 것인지, 망하게 하는 것인지는 서귀포시민이 이미 판단해 있다.
시민 對 시민의 싸움 부추기는 행정
서울의 대형 마트를 유치하겠다는 계획도 시정이 ‘시민 대(對) 시민의 싸움’으로 빌미를 제공했고 이를 부채질하고 있다. 이것이 유치되는 쪽 시민들이야 환영할 일이지만, 이것으로 다수의 토박이 중소상인들이 몰락을 볼 것은 뻔하다. 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가 쇼핑 아우렛을 유치하려다 결국 중소상인들의 격렬한 반대에 부닥쳐 더 이상 추진치 못했던 것이 엊그제의 일이다. 이들 또한 당시 ‘지역경제의 침체 속 중소상인의 몰락’을 반대 이유로 들고 나왔는데, 이런 판국에 서귀포에 대형 마트 유치를 계획한다는 자체가 의문일 수밖에 없다.
백보를 양보해 종합 터미널과 겸해 추진한다 하더라도 하루 수입 전부를 서울로 보내버린다는 대형마트를 중소상인들을 죽이면서까지 유치하는 것이 ‘정상적인 시정’인지 의심쩍은 일이 한 둘이 아니다. 서귀포를 망치는 자가 다름 아닌 서귀포시 행정이라는 묘한 등식이 성립하는 현상을 여기서 보게 된다. 시민을 위한다고 하는 행정이 거꾸로 시민을 화나게 하고 결국 서귀포를 망치게 하는 이 꼬락서니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