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外樣)과 속(本質)
요즘 사람들은 겉만 봐서는 나이를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TV를 봐도 성형수술을 했거나 아니면 얼굴 주름을 없애는 보톡스(botox)주사를 맞은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얼굴의 너무 빵빵하다. 또한 성형을 한 젊은 여자들은 대부분 그 얼굴이 그 얼굴이다.
탤런트, 가수 등 대중문화의 총아인 인기 스타들은 젊다 못해 어려진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또 그들에게 열광하는 삼촌뻘 나이의 아줌마 아저씨들 또한 예전에 비하면 10년은 젊어 보인다. 내가 소싯적에 쟁기를 지고 밭에서 밭 갈고 조, 보리농사를 하신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겉은 거칠었으나 속(마음)은 향기로운 사회의 버팀목이었다.
그 당시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겉과 외모는 세련되지 못해도 사회를 유지하는 선생이고 사회를 안정시키는 리더였다. 그들의 얼굴에 새겨진 굵은 주름은 경험과 지혜의 징표였다. 하지만 요즘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얼굴에 주름 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외모는 세련미가 넘치지만 속은 이기적이고 계산적으로 살아가는 루비족( Refresh, uncommon, beautiful, youthful)들이다.
이들은 성형수술, 얼굴주사(botox)을 십분 활용한다. 이들은 외모 관리가 생의 목표다. 한 사람의 외양, 피부가 그 사람의 모든 것 인양 숭상하고 찬송하는 오늘날의 풍속은 인류 역사상 미증유(未曾有)다. 지금은 관리하지 않은 외모와 피부는 사회적 약자의 상징이다.
왜 이렇게 되어가고 있을까? 우리들의 먹고, 마시고, 보고, 듣고. 느끼고 하는 것 모두가 겉만 번지르르하고 피상적(皮相的)으로 되어가는 데 속보다도 겉을 중시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우리들의 요즘 먹는 대부분의 음식들은 재료를 여러 번 가공하여 보기 좋고 먹기 좋게 만든 것이다. 마음 속 깊은 곳을 뒤흔드는, 추억과 감동이 함께하는 옛날 맛이 아니라, 건강을 도외시한 화학조미료로 맛만 배가된 음식들이다. 아무리 요리 점문가가 만든 요리라 해도 결국은 자신의 직접 맛보고 자연 소스로 만든 음식이 아닌 경우에는 피상적인 선입관으로 포장된 음식이다.
또 글 잘 쓰는 사람이 아니라 말 잘하는 사람이 인기를 끈다. 숙고(熟考)와 지혜에서 나온 문장은 부박(浮薄)한 유행어보다 외면당한다. 그러나 말은 글보다 피상적이다. 말이 아무리 매끄럽고 듣기 좋다고 해도 생각은 오래 머무를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메일은 편지보다 피상적이고. 또 인터넷속의 뉴스는 신문의 뉴스보다 피상적이다. LCD화면은 스크린보다, 스크린은 무대보다 피상적이다. 도로의 4차선은 2차선보다 피상적이다.
차선의 많은 도로를 빨리 주행하다보면 자신이 가는 길 주변의 풍경을 마음에 담거나 그 풍경의 세부를 관찰하거나 풍경에서 위안을 얻을 겨를이 없다. 그렇다고 이런 시속(時俗)자체가 모두 문제라는 말은 아니다. 예쁘게 만드는 기술은 포장과 유통과정에서 일자리가 생기고 이윤이 창출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겉과 외양 때문에 본질이 흐려지고 본말이 전도되는 것이다. 말은 마차 앞에 세워야지 말 앞에 마차를 세울 수는 없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우리들의 몸과 정신, 즉 겉과 속은 수백 만 년 동안 자연스러운 진화 속도에 적응하면서 외양과 내면의 균형을 갖춰 왔다. 세계적인 정신 철학자들은 유한한 삶과 인간의 존재의 본질을 깨닫고 부박함과 피상 성을 절제내지는 배격을 권장 해왔다. 인간 이상(以上)의 어떤 존재에 대해 속(본질)을 경배하고 인지(人智)로는 알 수 없는 신비의 두려움이 우리 사회를 유지하는 에너지였다.
그러던 우리의 가치관을 몇 년 사이에 껍데기가 본질을 뒤엎는 문화가 판을 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는 현대사회는 여성의 아름다움은 절대적이고 종교적이라고 할 만큼 지상명령이 되었기 때문이다. 외모가 여성의 자기정체성과 동일시되고 또한 성공의 조건이 되는 현대사회에서 몸매에 신경을 쓰는 것이 마치 여성의 의무처럼 되어버린 것이다.
아름다운 몸매는 소비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의 일차적 조건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 인정과 보상을 얻는 수단이 되고 있다. 따라서 여성들 간의 몸매경쟁은 마치 생존경쟁처럼 날로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최근에 한국에서는 몸매경쟁을 부추기는 다양한 미용 산업, 건강의학 등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다이어트, 슬리밍(체중 감량을 위한 절식이나 운동), 미용기술, 건강의학, 피부 관리, 화장, 선탠, 각종 성형시술, 몸매교정, 차밍스쿨, 체형 관리를 위한 레저, 헬스 등의 각종 육체관리 산업은 여성의 몸의 어느 한 부분도 있는 그대로 남겨두지 않는다고 한다. 이러한 육체산업은 상업적인 규범화를 여성 개개인의 ‘자기 결정’의 수사학으로 신비화시켜 자발성을 유도하고 경쟁심을 부추긴다.
육체산업은 여성을 치장하는 성으로 보는 고정관념과 여성의 몸을 서열화 하면서 차별과 보상을 해 온 외모 차별적 관행에 기대어 성장한다. 육체산업은 여성들의 몸 가꾸기를 자아창조, 개성 연출의 구호로 상품화 논리를 교모하게 은폐하고 있다.
이와 같이 피상적인 것에 둘러싸이고, 겉만 번지르르한 외양은 모방심리가 작용하여 성형수술, 피부주사 등 여러 가지 사회의 폐해가 나타고 있는 현실에 대한 1차적인 책임은 남성들이라고 하고 싶다.
수필가 김찬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