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공양
공양이란 음식을 베풀어 섬긴다는 아름다운 말이다.
불가에서 쓰이지만 그 뜻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느 날, 어린 손녀에게 동화를 읽어주고 있었다.
『 풀밭으로 소가 지나가며 김이 솟는 똥을 떨어뜨리자, 풀들이 외쳤다.
“이게 뭐야 아이구 냄새”
똥은 수줍은 듯 말했다.
“나야, 어제 소에게 먹힌 네 친구잖아”
“내 친구라구? 어림없는 소리야, 네 모습이 어떤지 모르겠니?”
똥은 슬펐다. 그때 햇님이 속삭였다.
“슬퍼하지 마라. 너는 소에게 힘을 주었단다.”
잠시 후 날개를 반짝이며 풍뎅이 한 마리가 날아왔다. 풀들은 반기며 소리쳤다.
“어서 와서 놀다 가요, 내게는 영롱한 이슬이 있어요.”
그 말을 못 들은 척 풍뎅이는 쇠똥에게 가서
“저어, 내 아기를 좀 길러 주셔요.”
“내가 어떻게? 나는 이슬도 맺힐 수 없는 똥일 뿐인 데요”
“아니에요, 우리 아기는 당신 가슴의 따뜻함이 필요하답니다.”
풍뎅이는 쇠똥 속에다 알을 낳고 날아갔다.
얼마 후 쇠똥의 따사로운 기운으로 알들은 깨어나고 똥을 먹으며 무럭무럭 자랐다.
똥이 거의 없어질 무렵, 어린 풍뎅이들은 하늘로 날아올랐다. 풀들이 말했다.
“어 똥이 보이지 않아, 어디로 갔지?”
그때 하늘에서 가냘픈 목소리가 들렸다.
“애들아 나 여기 있어 ”』
동화를 들려주며 전율이 왔다.
풀은 쇠똥이 되고 똥은 풍뎅이가 되어 비상한 것이다!
생태계의 그물, 씨줄과 날줄로 얽히어 끊임없이 순환하는 현상이 삶이라는 걸 분명하게 깨우친다. 풀과 소와 풍뎅이는 겉으로 전혀 다른 개체인데 동화에서처럼 서로 왕래하며 형태를 바꾸고 있다. 그 때, 문득 잠자리가 사마귀에게 먹히는 걸 보며
“쉿 조용히 하라, 거룩한 공양이다”
라고 외친 시인의 심안이 손에 잡혔다.
어느 날 집들이 잔치를 하는 집에 통돼지 바비큐가 배달되어 왔다. 포장을 풀어보니 황갈색으로 잘 구어 낸 돼지 한 마리가 얌전히 누워있었다. 가슴을 가르고 갈비 살을 뜯어내어 수북하게 올려놓자 사람들이 제각기 덜어내서 부지런히 먹는다. 기름이 잘 빠진 고기는 쫄깃하고 고소하여 맛이 있었다.
삽시간에 살을 다 뜯긴 돼지는 가슴을 앙상하게 드러내고 머리통만 온전히 유지한 채 말이 없었다. 돼지는 여러 명의 사람에게 거룩한 공양을 마친 것이다. 순간 뱃속에 들어간 고기가 살이 되고 피가 되어 인간의 일부로 바뀌는 과정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내 육체는 육류와 생선, 해조류와 과일, 채소와 곡류들이 남긴 영양소의 결집이다. 나를 형성한 신체 기관, 한 생애를 지탱 해준 몸은 다른 존재의 공양으로 이루어진 조직들의 재구성이다.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은 소에게 힘을 준 풀처럼 희생 된 자들의 공양으로 하여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내 몸이 그렇다면 마음은 무엇으로 공양 받고 있을까.
뜨고 지는 해와 달, 산천초목, 사계절 바뀌는 온갖 풍상, 삼라만상의 형태와 소리와 향기가 모두 다 삶속으로 녹아들어 감각을 채우고 생각을 이끌어 영혼의 비상을 꿈꾸게 한다. 광막한 우주에서 보면 소립자에 지나지 않을 나를, 이 우주의 전 존재가 관여하여 거룩한 공양으로 채워져 있음을 보라.
물아일체(物我一體)라 했던 선인들의 혜안이 새삼스럽고, 인간 외의 존재를 가벼이 여기던 내 오만이 부끄러웠다. 이 몸 또한 어느 날에 숨이 다하면, 다른 생명 속으로 스며들 것을.
풀이 쇠똥이 되고 풍뎅이가 되듯 종(種)을 넘나들며 순환하는 목숨이여, 어디까지가 너이고 어디서부터가 나인가. 깊은 숨을 토해 내지 않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