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士들의 감투 욕심

2005-01-10     강정만 편집국장

영국의 철학자이며 역사가인 흄은 말년에 부자가 됐다. 부자가 된 이후 괴이하게도 ‘대영제국사’의 마지막 부분을 쓰는데 질질 끌었다. 친구들이 계속 쓸 것을 종용한데 대한 그의 대답이 걸작이다. “내가 쓰지 않는 이유는 네 가지가 있다.

너무 늙었고 너무 살이 쪘고, 너무 게을러졌고, 너무 돈이 많다”. 공자의 제자 안연(顔淵)은 가난하게 살았다. 공자가 그에게 가난하게 살면서도 재산과 출세가 보장된 벼슬을 하지 않는 까닭을 물었다. 그는 “곽외(郭外)에 밭이 있어 호구(戶口)를 면할 수 있고, 곽내에도 밭이 있어 옷을 기워 입을 수 있습니다. 거문고를 가지고 스스로 고독을 달랠 수 있고,  선생님께 배운 것으로 즐길 수 있으니 벼슬이 필요 없습니다”고 대답했다.

▶지식인이나 문사들이 생활여건이 좋아지면 본래의 영역을 내팽개치기 쉽다. 흄의 에피소드에서 상상이 되듯, 학자가 장관이 되면 그로부터는 정치가이지 더 이상 학자로서의 모습은 찾아보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지식인들이나 문사들이 어쩌다 권력에 발탁돼 ‘귀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면 그 본래의 업(業)은 빛바랠 수밖에 없다. 과거의 지식인으로서의 고매한 명망조차 잃어버리는 안쓰러운 경우도 허다하다.

최근에는 ‘귀한 자리’에 앉아 며칠 지나지 않아 본전 잃고 낙망한 지식인의 모습도 보았다. “고향에서 빈한하게 살지라도 책을 읽고 글을 쓰니 이 이상 벼슬이 없다”는 선비의 길은 그 정반대다. 우리 사회의 건강성이며 역동성은 안연과 같은 선비정신에서 찾을 수 있다. 흄은 고작 ‘배불은 말년’에 불과 했지만, 우리 동네는 지식인이나 문사들이 등 따습고 배 불면, 한술 더 떠 서로 이전투구를 벌이는 데에 이골이 나 있다.

▶제주문인협회에 감투싸움이 벌어졌다. 문인협회장을 뽑는 선거가 과열되고 있다 한다. 대학이 선거과열 모습을 띠더니 또 다른 지식인들이 모여 있는 문사 단체에도 예외 없는 선거 판 놀이가 횡행하고 있다. 지식인이나 문사로서의 선비정신을 이들에게서 기대하는 것은 이제 날 샌 모양이다.

이 감투싸움에, 제주사회에 도는 소문들이 썩 좋지 않을 뿐 아니라, 많은 문인들이 실망해 있다. 이런 문인 사회의 양상은 요즘의 문인 ‘다량생산’과 다르지 않을 듯 하다. 옛날에는 문사들이 그래도 선비로서 얼굴을 꾸렸고 대우를 받았다. 문단등단이 그야말로 ‘낙타의 바늘귀’였고, 고시합격과 같은 대우를 받았다. 요즘엔 문학지 등단은 흔한 일이다. 흔한 문인시대의 문인단체장을 뽑는 선거, 그래서 말이 많은가 보다. 그래서 앞으로 탈도 많을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