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메문화 날다
2011-10-18 김관후
심방이 만들어내는 기메는 다양하다. 그가 집전 가능한 굿의 숫자만큼 기메의 숫자도 늘어난다. 부엌을 지키는 조왕신을 상징하는 기메, 어머니의 속옷 속을 통과하여 의형제를 맺은 과정을 상징하는 육고비 육할렬 기메, 오방신의 신상을 표현한 오방기, 시왕의 신상인 시왕기, 저승사자를 상징하는 차사기 등의 신상과 함께 현금대신 신에게 올리는 돈인 지전, 신이 내려오는 길인 대통기 등 기메의 숫자만도 수십여 개다.
근래에는 오색지로 만든 기메지전이 굿판을 장식하고 있다. 하지만 과거에는 신성함과 엄숙함을 강조한 백색의 기메가 대부분이었다. 어린시절 굿판에서 그 기메를 보고 신기함을 느낀적이 한두번이 아나며 지금도 선명하게 내 눈앞에 그려진다.
그 기메가 전시장으로 옮겨지면서 시각적 체험이 강조되면서 예술과 만났다. 신의 몸을 상징하는 종이에 깃들여 있는 숭고함과 두려움은 그 자체의 아름다움과 함께 독특한 느낌을 전달하였다. 기메의 조형적 가치를 조명하는 전시는 제주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미국까지 건너갔다.
그런 기메문화가 미국인을 감동시켰다. 늦은 이야기지만 제주작가 고길천이 미국 워싱턴주 포타운젠에 있는 센트럼 아트레지던시에 참여하여 2010년 오픈스튜디오를 열었다. 고 작가는 작품 '날으는 체체보카'와 '잠자는 체체보카'에서 현지의 원주민 추장인 '체체모카(Chetzemoka)' 이름이 새겨진 배를 제주 '기메' 문화와 접목한 설치작업을 선보여 "굉장히 인상적이다"는 언론 반응을 보였다.
고 작가는 작품을 통해 미국 원주민과 한국 문화를 연결 짓는데 종이접기, 샤머니즘의식, ‘기메’ 활용 최종작업 등에서 명백히 감지된다. ‘붕대감은 새’ 동판화 연작도 이번 전시에 함께 선보였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게적인 것임을 증명하였다.
고길천은 탐라미술인협회 회원이다. ‘4·3미술제’에도 참여하여 강요배, 고길천, 양미경, 오
석훈, 고경화 등고 함께 직접 4·3 유해발굴 현장을 찾거나 유족들의 증언 등 듣고 공감하는 작업을 선행했다. 그의 작품에는 4·3의 역사성뿐 아니라 한 개인의 아픔과 고통까지도 내포돼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제주공항 유해발굴 현장에서 발굴된 희생자의 의류를 프로타주 했다. 흙 속에 묻혀 있느라 군데군데 삭아있는 저고리가 그 주인을 잃은 채다. ‘60여년 만의 외출’을 하게 된 옷의 주인의 영혼은 드디어 흙 밖으로 나왔으나 우리는 유물을 통해 무거운 마음을 지우지 못한다. 지워지기 쉬운 연필로 프로타주 돼 있어 아련한 느낌이 더욱 강해진다.
예로부터 제주도에서는 심방이 주제로 기메지전을 깃들인 큰굿을 행해왔다. 그런데 근래에는 작가들이 나섰다. 2005년 ‘신화의 상상 기메展’을 시작으로 2006년에 ‘너울거리는 삶의 희로애락 기메지전’으로 이어지면서 도민들의 관심을 끌어왔다. 이들 전시는 인간문화재 심방들이 주재하였다. 이들은 양창보 심방과 제주큰굿예능보유자인 이중춘 심방, 김윤수 심방 등이다.
고길천 작가는 최근 세계적인 석학이자 미국의 대표적인 진보학자인 노엄 촘스키 교수를 만났다. 비록 촘스키 교수는 제주 방문을 약속하지는 않았지만, "제주 해군기지 반대는 고결한 투쟁"이라며 "앞으로 강정마을의 투쟁을 더욱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겠다"고 화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