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산행

2011-10-16     김찬집
요즘 주말마다 산행을 한다. 가을산행은 저마다 의미가 다를 테지만 나는 걸으면서 상념에 젖어드는 경우가 많다. 걸으면서 느끼는 상념 속에는 삶의 음악이 있고, 시가 있고, 철학이 있고, 후회가 있고. 반성이 있고, 결심이 있다. 
한라산 등산로 어느 쪽이나 이미 단풍을 시작 되었다. 산은 단풍으로 변하는 것에 대하여 저항하지도 반항하지도 않는다. 단풍의 변화를 자기 것으로  받아드린 가을 한라산의 풍광은 아름다움을 넘어 섬섬옥수로 장식한 무아(無我)의 경지다.
단풍은 한라산 정상에서 아래로 하루40여m씩 산 아래로 내려간다고 한다. 어쩌면 이것이 “가을의 속도”이리라! 하지만 가을 산의 단풍은 머지않아 마지막 잎새마저 땅에 떨 구고  하나의 생명 사이클을 매듭짓는 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안다.
그래서 1905년에 발표된 오 헨리가 지은 인도주의적 단편 “마지막 잎새”에서 폐렴으로 죽음을 앞둔 소녀의 절망적 상황을 안타까이 여긴 어느 무명 화가는 희생적인 사랑으로 바람이 몹시 부는 날 밤, 이웃에게 등불을 빌려 혼신의 힘을 다해 마지막 담쟁이 잎을 그린 후  눈 오는 거리에서 죽었다. 삭막한 현대사회 속에서 우리가 소중하게 살아야 할 삶의 한 단면이다.
사람들은 가을을 탄다고 한다.  작가 정비석은 사계절을 이렇게 구분한다. 봄은 기분을 방탕하게 흐르게 하고 여름은 활동을 개으르게 하며 겨울은 마음을 침울하게 하지만 가을은 생각을 깨끗하게 한다고 계절 속성을 구분했다.
우리들은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러나 나는 이 좋은 가을 날씨에 도서관이나 집에서 글만 읽기에는 청명한 환희의 가을 날씨가 너무 아깝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 아니라 산행의 계절이다. 가을 산행에는 시가 있고, 음악이 있고, 철학이 있고, 인생을 배울 수 있다.
우리들은 이 가을에서…… 산행에서든 공원에서든 마지막 한 잎새의 낙엽을 보고 무작정 생의 허무만 느끼고 슬프게만 생각하는 것이 정답일까?
세상의 모든 생은 유한한 숙명 앞에서 죽음이 슬픈 것만으로 점철 되는 것도 또 하나의  문제다. 왜냐하면 세상은 윤회(輪廻)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불교의 경전, 기독교의 바이블, 이슬람교의 코란, 유교의 경전에서 변하지 않는 삶의 진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상의 윤회(輪廻)라는 말은 모든 세상만사는 매듭과 시작이라는 말이다. 낙엽이 지는 것이나 사람의 죽음도 매듭이다. 모든 것이 매듭을 지을 수 없다는 것은 정말로 불행한 것이다. 끝이 없다는 것은 또 다른 의미의 저주다. 매듭짓고 끝이 보여야 다시 시작 할 희망이 있고 새로운 미래도 있다.
끝없이 펼쳐지는 것은 덧없는 세월일 순 있어도 구체적으로 뭔가 해볼 수 있는 미래는 결코 아니다. 우리들에게 매듭이 필요하다. 끝이 절실하다. 매듭지을 때를 끝이 있음을 알게 되면 세상이 돌아간다. 삶은 끝을 보기위해 뼈를 깎는 인내로 성공하는 것이다.
제주의 가을한라산에는 여름 내내 과년한 여성의 싱그러운 몸매처럼  물찬 초록색으로 건강미를 주름잡던 나무들도  이제는 매듭을 지을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듯 저마다 갈 길을 준비하는 것 같다. 우주의 커다란 질서에 순응하며 지금을 찾기 위해 그 치열했던 시간들을 마감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의 살아가면서 깨닫는 불변의 진리가 있다면 우리가 기쁨과 슬픔으로 아무리 난리를 치고 금방 하늘이 무너질 것 같던 위급한 사항들도 시간이 지나면 세월의 치료해주는 것을 깨닫는다.
서정시인 서정주는 초록이 지쳐서 단풍이 든다고 했다. 서정주 시인의 시심은 여름날 찬란했던  그 초록은 지쳐서 단풍이 드는 것처럼 우리들의 부단한 인생살이에서도 우리들의 꿈과 소망은 하나의 매듭을 향해 서서히 침묵으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라지는 것이라고 했다.
낙엽의 철학은 봄철에 한 알의 씨앗으로 태어났다가 여름에 한 송이 꽃으로 피었다가 열매를 맺고 이 가을에 낙엽으로 떨어지는 것은 경건한 생명의 순환과 매듭의 아름다움을 잘 터득 할 수 있는 진리다. 가을에 잘 익어 아름다운 것은 과일과 단풍뿐만이 아니다. 우리들의 사랑이 그렇고 우리들의 삶이 그렇고 우리들의 건강이 그렇고, 인생 늙음이 그렇다.
가을 산행이 좋다는 것은 산 공기가 맑고 자연 경관이 아름다운 것 때문 만은 아니다. 이 땅에서 살아가야하는 현실이 어느 때보다도 더 어둡고 힘들기 때문에 가을 산행의 속살은 더욱더 우리를 지켜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가을 산행의 맑은 공기와 높은 언덕, 깊은 계곡은 너무 앞만 보며 바득 바득 살아가지 말고 간혹 낙엽을 보고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삶에 여유를 가지라는 조언이다.
요즘 한평생 삯바느질,  김밥장수, 생선장사하며 먹을 것 못 먹으면서 한 푼 한 푼 모은 할머니들은 거액의 돈을 가난하고 그늘지고 소외된 곳에 서슴없이 내주신다고한다. 이분들은 정녕우리사회를 지탱하는 지도자다. 재산이든 권력이든 뭐든지 가졌다하면 더 가지려고 혈안이 되는 고소득, 고학력자들의 이기적인 탐욕 자들에게 가을 산행을 권하고 싶다. 가을산행에는  생의 매듭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