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추억을 되찾게 해준 골목길
나는 현무암으로 만든 검은 돌담과 푸른 바다, 그리고 온갖 다채로운 빛깔을 뽐내는 식물들을 구경하며 걷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제주의 자연을 벗 삼은 흙길이 아닌 회색 시멘트 길과 담으로 둘려 쌓인 골목길을 1시간 이상 걸어본 경험은 없었다.그런데 일도2동주민센터에 근무하게 되면서 이번에 수급자 및 중증장애인들에게 추석위문품을 전달하기 위해 이런 회색 시멘트 골목길을 몇 시간씩 걸어서 돌아다녀보게 되었다. 가을이지만 여전히 무더운 날씨에 위문품을 배달하는 일은 육체적으로 힘이 많이 들었다.
특히 싱그러운 자연을 느낄 수 없는 삭막하기만 한 회색 골목길은 내 몸과 마음을 더욱 지치게 했다.하지만 방긋 웃으며 내게 인사를 건네는 지역주민들의 인자한 모습과 “더운 날씨에도 고생이 많다”는 따스한 말 한마디가 더해 갈수록 마치 올레 길을 걷는 것처럼 내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내가 그날 걸었던 회색 골목길에는 자연의 아름다움은 담겨있지 않았지만 일도이동 지역주민들의 따스한 마음이 가득 묻어나 있었다.그리고 그냥 쉽게 생각되어지는 골목길은 칙칙하다는 생각이었는데 일도2동에는 정말 어릴 적 추억을 생각나게 하는 골목길이 있어 의외였다.그 골목길에는 아이에서 어른이 되면서 잊어 버렸던 추억들을 떠오르게 하는 힌트가 숨겨져 있었다. 바로 회색 담벼락에 그려진 아이들이 즐겁게 말타기, 술래잡기 놀이를 하는 모습, 쉼 팡이 조성된 곳에는 여러 만화주인공 캐릭터들이 그림으로 그려져 있었다. 갑자기 시간이 거꾸로 흐르듯이 내 어린시절 친구들과 함께 했던 아름다웠던 시간들이 다시 내게로 찾아왔다.
하루일과를 마치고 직장 선배에게 중앙병원 남쪽 골목길이 다른 골목과 다르다고 했더니 2008년 제주특별자치도 공공미술 프로젝트사업으로 조성된 일도2동 기억의 정원 두맹이 골목이라고 하였다. 또한 그 동네 주변에는 꽃과 나비가 함께하는 벽화, 또 초등학생들이 그린 그림을 타일로 제작 타일벽화 골목이 조성되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처럼 회색 골목길은 내게 새로운 추억 하나와 잊고 있었던 추억들을 되찾게 해주었다.
나는 일이 끝나고 나의 추억들을 되찾게 해준 일도2동 기억의 정원 두맹이 골목길을 찬찬히 다시 둘러보고 누군가 물었을 때 안내를 위해 준비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