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다시 보기

2011-09-14     송순강
10년전 이슬람교 중앙성회 배모씨를 만난 적이 있다. 선문 답이 오고가다 그 분 한테서 성꾸란 (코란) 한국판 번역 책을 받았다. 그 후 4개월후 세계가 놀란 9.11테러 사건이 일어났다. 무고한 인명과 재산 등 끔찍한 공포에 떨며 전세계 국민을 경악케 했다.이때 서제에 있던 꾸란을 찾아 한 장 한 장 읽어 내려 갔다. 읽을수록 꾸란에 빠졌다. 꾸란에 언급한 25명이 예언자 와 선지자. 무슬림 은 어떻게 살았는가? 이들이 삶과 경제 수니파 와 시아파의 갈등 그리고 한손에 칼 한손에 꾸란 식의 교리에도 없는 실체와 다른 망령이 알수있다 .예언자 무하마드 그는 누구일까? 알라인가 아니면 알라신인가. 꾸란(코란) 한 예수그리스도 등 우리가 접할수록 이슬람과 기독교는 종교 교리에 따라 견원지간이 됐다. 중세기 시대인 종교 전쟁때에는 영국이 앞섰다. 영국이 여러 왕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사람을 꼽자면 사자왕 리차드 1세다. 그가 이름을 떨친 것은 십자군 전쟁이다. 기독교 성지인 예수 살렘을 이슬람 세계로부터 되찾자는 명목을 일으킨 유럽 종교 전쟁이다. 1190연 제 3차 십자군 원정대는 이슬람 지도자 살라딘이 차지한 예루살렘을 되찾기 위해 상당한 성과를 올릴 수 있었다. 그것은 기독교 성직자 순례자들이 예수 살렘을 출입하는 협상을 성사 시킨 것이다. 하지만 적장인 살라딘은 포용력과 온화함에 대비되게 이슬람 포로 수천 명을 주저 없이 처형 했을 만큼 잔혹한 성격을 가진 왕이 였다. 알다시피 이슬람은 순종, 평화를 뜻하며 유일신을 믿고 그에 뜻에 완전히 순종 복중 하는 종교다. 유일신은 하느님, 아랍인, 알라를 뜻하며 특정한 신의 이름을 지칭 하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이슬람 에서는 유일신 사상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코란은 기독교의 구약이나 신약등과 함께 하느님의 계시를 받은 성서이고 창시자 마호메트는 모세 예수등 많은 예언자들과 함께 하느님의 선책을 받은 마지막 사도로 본다. 무슬림은 예언자들이 순종 하지만 누구도 신격을 갖춘 대상으로 따르지 않는다. 무슬림의 신앙도 하느님 외에는 신이 없고 마호메트는 하느님의 사도자는 신앙고백을 하면서 시작한다. 우리나라도 먼먼 옛날 아랍인과의 교류가 빈번했다. 이슬람 학자인 마수이는 947년 한반도에 대해 신선한 공기 맑은 물 비옥한 농토를 가졌다 기록했다. 다마스쿠스를 수도를 한 우마이야 왕조(661~750) 시대 박해를 피해 달아난 알타 위족이 한반도에 망명 했다는 기록도 있다 고려 시대 때는 몽골을 매개로 이슬람 인과 교류가 더욱 빈번 했다. 이 승화께서 조선 불교 통사에 따르면 이들은 고려 개성에 예궁(禮宮 )을 짖고 살았다. 예궁은 지금으로 보면 모스크다. 이슬람에 대해 조선 세종실록에 자주 등장한다. 예조판서가 세종에게 아뢰길 회교도의 무리가 우리가 입는옷이 이질감이 느껴지는바 이제 조선 백성이 되었으니 조선 옷을 달라, 세종은 이말이 타당하게 여겨 그러하다 고 윤허를 내리고 틈만 나면 코란 강독 만은 아주 즐겼다고 한다. 지금도 지구촌에는 이슬람이 전사자라는 탈레반들이 테러를 자행하고 있다. 10년 전 9.11테러를 잊을 수 없다. 더욱더 2007년 8월 파슈툰족 무장 이슬람 전사자들의 우리나라 봉사자 23명을 피랍납치 했다. 이중 제주 출신 고 배모씨 목사께서 살해 됐다. 따라서 인질 사건을 계기로 우리들에게도 이슬람이 가까이 다가왔다. 탈레반은 알라의 가르침을 이단적으로 해석한다. 따라서 인명을 살해하고 인질 사건을 겪 을 때 마다 탈레반 때문에 약 14억의 이슬람 전체를 인식하는 태도가 더욱 심해진 것 같다. 그래선 안 된다 .이슬람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될 모처럼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다원화 사회에서는 다른 문명 다른 종교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곧 경쟁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