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도의 꿈

2011-09-04     고훈식

섬 이름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했던가? 가도 가도 가고픈 섬 가파도. 높낮이가 가장 적어 청보리 지평선이 환상적인 섬.

한라산 높이 1,950m인 ‘한번 구경 옵서.’와 가파도의 높이인 20.5m를 ‘이디도 옵서.’ 하면 썩 어울리는데 면적 0.84㎢, 해안선 길이4.2㎞와 18만평의 청보리 지평선을 ‘영 파도가 사나운 사이를 씨부렁거리며 섬을 돌았다.’고 암기하면 금상첨화다. 그 청보리 물결 위로 동쪽으로는 한라산을 비롯한 5개산(산방산, 송악산, 고근산, 군산, 단산 )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으며 5.5㎞ 더 멀리 국토 최남단 마라도가 보이는 비경을 간직한 섬이다.

바람이 잔잔하게 불면 어디선가 비파소리가 들린다는 모슬포摹瑟浦 항에서 뱃길로 20분, 남쪽 5.5㎞ 해상에 있어 수평선으로 원을 그린 섬.

정말이지 여기서는 수평선이 제대로 보인다. 수평선은 세상 모든 높이의 시작이다. 그래서 논어엔 세상에서 가장 선한 것이 물이라고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명언을 남겼다. 물은 낮은 곳을 찾아 흐르다가 종국에는 바다로 모인다. 모이긴 하지만 가장 낮게 쌓인다. 그래서 해발海拔이라는 삼차원이 탄생한 것이다.

저 멀리 마라도가 보인다. 말이 줄지어 달린다는 의미인가?  거대한 전복처럼 마라도는 살아서 굼틀거리는데 국토최남단을 다녀간다는 신념으로 관광객들이 많이 가는데 살아서 헤엄치는 가오리 닮은 가파도엔 관광객 방문이 한산하다. 뒤에 오는 파도가 더 아름다운 가파도의 진면목을 모르는 눈치다.

이 섬에서 구할 수 있는 선물로는 사색과 산책이다. 낮잠지기 좋을 만큼 이 섬에 오면 마음이 겸손해지고 눈매가 다정해지는데 바다는 넘치거나 모자람이 없는 중용의 미덕을 표현하는 현장이다. 높낮이가 겸손하기에 바람도 구김살 없이 반기기에 단전에 기를 모우기 좋게 심호흡을 다스릴 수 있다. 그것 또한 가파도에서 즐길 수 있는 풍욕風浴이다.

거기다가 바다를 바라보는 경관이 눈이 부실 지경이다. 더하여 두리여를 중심으로 펼쳐진 바위너설들은 나로 하여금 용암이 흘렀던 몇 십만 년 전으로 돌아가는 흥분에 빠뜨린다.

가파도는 고인돌군락지로도 유별나다. 부락의 발복發福을 위하여 제를 지내려고 거대한 바위들을 옮겨왔겠지만 더러 조상의 묘로 쓰려고 고이 간직한 고인돌을 만나는 보람은 특별하다.

고인돌은 아무 곳이나 있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더하여 조개 무덤도 발견하여 보전하고 있으니 과연 명승지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하겠다.

토양도 풍화도가 높아 농사짓기에 유리하며, 제주특별자치도 부속도서 중 용수조건이 가장 좋다. 큰응진물, 냇골챙이물, 돈물깍, 물앞 등 균형 있게 분포했던 용천수는 가파도 주민들의 생명수다. 가파도에서 논농사를 했던 사실은 다른 섬에 비해 축복을 받은 거다. 그러니까 가파도에서 마시는 물은 천연암반수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또한 말과 소를 키웠던, 특히 제주도가 자랑하는 흑우(黑牛)의 목장이었다는 기록도 소중하다. 누군가가 다시 소와 말을 키울 수도 있으니까.

특히 2012년 WCC(세계자연보전총회)에서 기획의 섬으로 거듭나길 바란다. 마라도에서 올린 봉화나 연기를 가파도에서 화답하는 봉화나 연기를 피워 모슬포에 전하는 봉수대 설치로 원시적인 통신을 직접 보게 될 것이며, 전선 지중화 공사로 가파도 풍경은 원시로 돌아가는 환상으로 더 멋질 수밖에. 그리하여 2012개의 연을 상징적으로 날리는 행사로 세계자연보전의 효과는 더 클 것이고 용천수가 용솟음치는 섬이므로 너울을 막을 수 있는 여가 많아 안전한 장소를 선정, 인공 수영장을 만들어서 청정물결에 몸을 씻는다면 이 또한 특별하리라.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서양에 소개된 곳으로도 유명하다. 1653년 네덜란드 선박이 가파도에 표류했다는 추측 때문인데 14년 동안 우여곡절을 넘긴 하멜이 귀국한 뒤에 쓴『하멜표류기』에는 '케파트(Quepart)'라는 지명으로 표기되어 있어 외국인에겐 인기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가파도는 가파도를 지키는 사람들의 뜻에 의한 난개발 자제로 해녀가 대를 이어 물질로 생업을 이어나갈 것이고, 어부 또한 풍요로운 바다를 헤치며 조업을 할 것이고 추억이 넘치는 10~1번 올레 길로 고풍스런 풍경을 오래 지니게 될 것이다. 그렇게 제주도다운 모습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섬, 가파도. 이 섬의 가치를 우리들은 알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