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꿩 대신 닭'의 문화적 상징성
예전엔 구슬 장닭이 힘차게 홰를 치며 시원하게 울어대면 새벽이 열리고 동네 사람들이 잠에서 깨어나 하루를 준비했다. 닭의 해인 을유년을 맞으면서 사람들은 희망의 덕담을 나누고 행복만들기를 꿈꾸고 있다. 이렇듯 ‘닭의 해’의 의미가 유다르게 강조되는 것은 닭의 문화적 상징성 때문이 아닐까 싶다.
‘꿩 대신 닭’이라는 속담이 가리키듯이, 닭은 꿩을 대신하는 길조로 인식되어 왔다. 어렵던 시절엔 남자들은 처가에 다녀온 친구에게 “씨 암닭 몇 마리나 먹었어?” 하고 농담을 걸기도 했다. 이처럼 닭은 귀한 손님에게나 대접하는 것이었다.
사람과 닭은 친밀한 관계를 맺어왔다. 닭에 관한 속담이 많이 전해 오는 것이 이를 증명해 주고 있다. 아는 사이에 서로 외면함을 이르며 ‘닭 소 보듯, 소 닭 보듯 한다.’고 말한다. 작은 단체의 우두머리가 큰 단체의 꼴지보다 낫다는 뜻으로 ‘닭의 볏은 될지언정 소의 꼬리는 되지 말라.’고 한다.
어디 그뿐이랴. 아낙네가 자기 주장을 심히 내세울 때 이를 막기 위해 ‘암닭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속담도 있다. 양성평등시대인 요즘엔 무심코 이 속담을 말했다가는 혼쭐날만큼 세상이 변했다. 하고자 했던 일이 수포로 돌아갔을때는 ‘닭 쫓던 개 지붕쳐다본다’고 한다.
제주도 민속에서는 새해의 첫 유일(酉日)을 닭의 날로 관념화 되어왔다고 전해진다. 이 날에 모임을 가지면 닭처럼 싸움이 일어난다고 생각되어 모이지 않았다. 닭을 잡으면 닭이 제대로 자라지 않으며, 초가지붕을 손질하면 닭이 지붕을 망가뜨린다고 말했다. 정월 초하룻날 새벽에 우는 닭의 울음소리가 열 번을 넘으면 그해 풍년이 든다고 점쳤다. 그러나 세월이 흐름에 따라 이러한 민속문화들은 이제 한낱 무형의 문화유산으로 전승될 뿐이다.
닭은 울음으로 새벽을 알리고 빛의 도래를 예고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천지개벽을 다룬 제주도 무속신화 ‘천지왕 본풀이’는 이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제주도의 창세기는 닭울음으로 열린 것이다. 천지왕 본풀이 개벽 부문은 이렇다. <태초에 천지는 암흑과 혼합으로 휩싸여 한 덩어리가 되어 있는 상태였다.
이 혼돈 천지에 개벽의 기운이 돌기 시작하더니 하늘과 땅 사이는 금이 생겨났다. 이 금이 점점 벌어지면서 땅덩어리에는 산이 솟아 오르고 물이 흘러 내려서 하늘과 땅의 경계는 분명해져 갔다. 이때, 하늘에선 청이슬이 내리고 땅으로는 흙이슬이 솟아서 서로 합수(合水)되어 음양이 상통으로 만물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먼저 별이 생겨나고 아직 태양이 없을 때 천황닭이 목을 들고, 지황닭이 날개를 치고, 인황닭이 꼬리를 치니 갑을동방(甲乙東方)에서 먼동이 트기 시작했다. 이때 옥황상제 천지왕(天地王)이 해도 둘, 달도 둘을 내보내어 천지는 활짝 개벽이 되었다. -----> 우주적 차원의 질서화를 설명하는 신화이다.
제주인들의 삶의 문화속에서도 닭과의 관계가 끈질기게 이어저 오고 있다. 옛부터 유월스무날을 닭 잡아 먹는 날로 여겨 보신해 왔고, 지금도 이 날을 닭고기 먹는 날이 되고 있다. 결혼식 때도 통닭과 삶은 달걀은 신랑 신부의 상차림에 계속 오르고 있다. 달걀의 경제학도 ?냥정신의 상징이다. 예전에는 달걀 한 개 가지고 가계에 가면 제비표 성냥, 바늘과 실을 살 수 있었다.
어린이들은 소풍갈때나 달걀 반찬을 맛 볼 수 있었다. 이렇듯 제주문화의 상징물로 지금도 전승되고 있는 닭의 해가 열렸으니 생활이 고달픈 사람들에게 축복만이 있기를 기원해 본다. 어려울 때일수록 ‘닭도 제 앞 모이는 긁어 먹는다’는 속담을 돼새기며 제 앞가림을 하며 살다보면 희망은 떠오를 것이다. 절망은 없다. 지진이 무너진 땅에도 맑은 샘은 솟아 오르고, 태풍이 지난 들에도 꽃은 피는 것이 삼라만상의 이치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