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퍼리치(Super Rich)
수퍼리치(Super Rich)라는 말은 증권사에 맡긴 금융자산이 30억 원이 넘는 투자자로서 전체 금융자산이 100억 원이 넘는 최고 부자를 뜻하는 신조어다.
요즘 최고 부자들은 투자할 시장이 없어서 삼불(三不)시대라고 한다는 것이다. 부동산은 불안(不安)하고, 저축은행은 믿을 수 없고(不信), 은행예금은 불만(不滿)스럽다는 말이다. 이런 소문을 들으면 우리국민의 80%인 중산서민층들은 배부른 사람들의 행복한 고민이라는 생각을 넘어 분노로 신세를 한탄하며 세상을 원망할 것이다.
국내외적으로 빈부격차가 확대되고, 소득에 대하여 불공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부자는 KTX보다 빠르게 물질의 동그라미 숫자를 늘려가는 반면, 가난한 자는 점점 더 빚의 수렁으로 빠져들어 간다. 세계화, 정보화가 만들어내는 빈부의 격차 현상을 경제학자들은 “차이 증가장치(Difference Accelerating Mechanism)라고 부른다.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소싯적인 60∼70년대만 해도 ‘백만장자’라는 말은 있어도 ‘천만장자’ ‘억만장자’라는 말은 없었다. 몇 조원의 재산을 가진 부자가 생긴 것도 10년이 안 되었다. 그런데 이제는 몇 십 조원의 넘는 갑부가 많은 세상이다.
한국 보건사회 연구원이 최근 펴낸 “보건.복지이슈&포커스” 에 저술한 내용을 빌리면 우리나라 가구의 재산보유현황에서 하위 약30%정도는 3000만원이 안 되며, 전체가구의 평균재산은 약2억7000만 원 정도라는 말이다. 또 가구의 총재산의 5억 원이면 상위 20%에 속한다고 한다. 그런데 비록 재산순위에서 상위 20%에 들더라도 이 5억 원 정도의 재산소유자는 버는 것보다 빚 갚는 것이 더 많아지는 것이 현실이다.
5억 원 정도 아파트 한 채를 가진 가구는 재산가치가 높은 것뿐이지 가구의 가처분 소득이 높은 것은 아니다. 가치가 높은(거품이든 아니든) 아파트 건물에서 생활비가 나오는 것도 아니다. 높은 물가에, 가구원들의 백수에, 몇10년 전보다 생활이 나아진 것은 없다고 집 있는 자들도 말한다. 나아진 것이 있다면 자주 먹는 음식이 ‘수제비’에서 ‘돼지갈비’ 로 변한 정도라는 말이다.
살불(三不)시대에 투자 할 때가 없어 푸념하는 수퍼리치들은 이자율이 높아지면 금덩어리가 늘어나지만, 부채가 많은 가난한 자들은 빚 덩어리가 늘어난다. ‘재산차이확대’ 현상이 점점 강화되고 있다. 이런 말을 하는 나를 보고 ‘진보좌파’라고 욕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러나 1000원짜리가 뭔지 모르는 거부의 손자와 그 1000원이 없어 조각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가난한자의 손녀, 백만 원짜리 수표를 갖고 다니며 쇼핑을 하는 부자들의 가족과 화제가 된 된장녀의 몸에 걸친 옷값만 4억 원이 된다는 거부의 딸과, 한 달 80만원을 벌려고 수 천 번 굽실거리는 가난한자들의 딸들이 공존하는 세상을 우리들은 능력이라는 말로 공평하다고 할 수 있을까? 이건 아니다 라는 것은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평균개념이 작용한 ‘국민소득 2만 달러’는 전체 인구의 80%인 중산 서민들에겐 ‘숫자’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진보좌파인가?
옛날속담에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누구나 노력만하면 부(富)를 가질 수 있다는 사회시스템을 표방하는 말이었다. 그래서 그 당시 우리사회는 안정된 것이다.
연동(신제주) 개발바람에 부자가 된 나의 친구의 말이다. 자기 재산의 30억이 넘으니까 금방 불더라는 말이다. 앞에서 말하는 30억 재산 소유자의 부는 손자세대까지 이어진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우리선조들의 생활문화의 속담은 우리들의 생활문화에 없어진지 오래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 세금구조80%가 근로자의 소득세에서 충당되는 구조다. 이런 의미로 근로자 세원을 유리천정(Glass Ceiling)이라고 한다. 이렇다면 정부예산, 가진 자들의 부(富)는 80%의 중산서민들이 내는 온갖 세금( 간접세, 소득세, 부가치세 등)에서 나온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고생하며 어렵게 생활에 견디는 80%의 중산서민들에게 어느 정도는 돌려주는 사회합의가 극히 필요하다는 말이다.
‘반값등록금’ ‘급식지원’ 충분히 논의해야 할 가치가 있는 정책이다. 무조건 정치 포퓰리즘(Populism)이라고 우길 일이 아니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시절에는 민주화가 정책이슈였다면, 지금은 복지가 정책이슈다. 복지정책모두가 폴퓰리즘이 아닌 것이다.
역사적으로 그리고 세계적으로 빈부의 격차가 극에 달했을 때 ‘부자들은 타도의 대상’이 되었다. 수 천 년의 국내외 역사기록에서 항상 나타났던 처절한 투쟁의 역사는 빈부 문제다. 이런 빈부의 역사를 봉건정치에서도 민심은 천심이라고 하는 것이다. 앞으로 갈수록 가속화하는 빈부문제는 민주정치의 근본통치이념이다. 물론 시장경제는 경쟁이다. 그러나 시장의 공정한 룰이 없는 시장은 경쟁이 없는 시장일 뿐이며, 경쟁이 없는 시장은 시장경제가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수필가 김 찬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