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검속 희생자 첫 배상 판결

지법, "국가는 유족에게 8800만원 지급하라"

2011-06-26     김광호
예비검속 사건 희생자 유족에 대해 국가가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는 판결이 나왔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사건인 제주예비검속 사건과 관련, 희생자 유족에 대한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첫 판결이어서 주목된다.
제주지법 제2민사부(재판장 신숙희 부장판사)는 예비검속 사건으로 숨진 고 모씨의 부인(89)과 자녀 2명 등 3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국가는 원고들에게 위자료.장례비 등 8800만원을 지급하라”고 최근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국가기관이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않고 밀행적.조직적으로 가해행위를 하고, 망인을 매장해 은폐했음에도 피고가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면서 원고들이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지 않았음을 탓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적어도 망인이 사망한 날로부터 유해발견 통지를 받은 2010년 2월25일께까지는 원고들에게 손해배상 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는 ‘객관적 장애’가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따라서 “위법행위를 한 국가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가 이제 와서 위법을 몰랐던 원고들에 대해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방어방식”이라며 “국가의 불법행위로 인해 피해를 당한 원고들을 보호할 필요성이 크다”고 밝혔다.
고 씨는 1950년 6월28일께 경찰 등에 의해 예비검속돼 서귀포경찰서로 이송된 후 절간고구마 창고에 구금돼 있다가 같은 해 7월29일께 군 트럭에 실려나간 후 정뜨르비행장(현 제주국제공항)에서 총살됐다.
원고인 고 씨의 부인과 자녀들은 2006년 3월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명회복 실무위원회로부터 제주4.3사건 희생자 유족으로 결정됐다는 통보를 받았으며, 지난 해 11월 국가를 상대로 9400여 만원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는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국가는 “망인이 사망한 1950년 7월 하순께로부터 5년이 훨씬 경과한 2010년 11월9일 소가 제기됐으므로 원고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은 이미 소멸시효가 완성됐다”고 주장했다.
한편 과거사정리위는 지난 해 6월 고 씨 외 194명의 제주예비검속 사건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했다.
따라서 이번 손해배상 지급 판결은 이들 다른 피해자 가족의 소송 제기 여부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