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 정예의 시대
이순신 장군은 명량해전에서 배 12척을 가져 왜선 300척을 부쉈다. 한동안 베스트셀러가 됐던 김훈의 ‘칼의 노러에 나오는 장면이다. 12대 300. 백분율로 셈해본다면 후하게 해 1대 99정도의 싸움이다. 이 소설을 읽고 “우리도 이렇게 하겠다”고 덤벼 든 친구들이 요즘 입방아에 자주 내리는 현 정부에 포진해 있는 386세대들이다. 작가는 최근 어느 인터뷰에서 이를 “무지몽매 하다”고 비난했지만, 한동안 유행되던 ‘80대 20의 법칙’에서 본다면 그렇게 비난할 일만은 아닐 듯 하다.
▶80대 20의 법칙은 “전체인구의 20%가 전체 부의 80%를 차지한다”는 ‘부의 불균형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이다. 이탈리아의 빌프레도 파레토가 처음 주창한 것으로, 비단 부의 분야만이 아니고 모든 부문에서 80대 20의 법칙은 적용된다. ‘전체 고객의 20%가 전체 매출액의 80%에 기여하고 있다’ ‘20%의 운전자가 전체 교통위반의 80%를 차지한다’ ‘20%의 범죄자가 80%의 범죄를 저지른다’ 등의 이론이 이 법칙이다. 우리나라 어느 최고 기업의 총수는 “한사람의 천재가 회사를 먹여 살린다”고 설파하고 다닌다. 이 정도까지 나가면 ‘90대 10의 법칙’이라고 할 만 하다. 10명의 종업원을 둔 회사에 단 한명이 인재가 나머지 9명을 먹여 살리는 시대, 80대 20의 법칙을 넘어 90대 10 법칙의 시대가 벌써 성큼 다가선 것은 아닌가?
▶옛날 원숭이들은 고구마를 먹을 때 모래나 흙이 묻어있는 채로 먹었다. 씻어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한 무리의 원숭이 중 한 마리가 고구마를 씻어 먹기 시작했다. 그러자 모든 원숭이들이 씻어 먹기 시작했다. 그 무리에 속하지 않는 지역의 모든 원숭이들까지 고구마를 주면 씻어 먹는 버릇을 가지기 시작해 이제는 ‘고구마는 씻어 먹는 것’이 일상화 됐다. 동물이나 인간은 늘 진화하고 있고 진화하지 않고서는 도태되기 마련이다.
▶‘소수정예’가 수백 척의 선단을 무찌르고, 한 마리의 비범한 원숭이가 전체 원숭이의 삶의 질을 높이는 시대는 새삼스럽게 오늘에 맞닥뜨리고 있지 않다. 먼 옛날부터 인간사회는 이런 조직의 행태로 굴러왔지만, 우리가 크게 의식하고 있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나 이제는 모두가 20% 또는 10% 속에 들어야 하는 시대다. 그만큼 세상은 급변하면서 할일이 많아져 바빠졌고, 각박해졌기 때문이다. 새해에는 모두가 선두에 서고, 프로가 돼 그래서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 나가기를 기원한다. 2004년의 소수정예들이여, 을유년 새해에도 끊임없이 전진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