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시평] 산업화시대 노인, 정보화시대 노인
제주시 동문시장 입구 제주약국 옆 도로어귀에서 해산물을 파는 할머니들이 서너 명 된다. 나의 와이프는 할머니들의 직접 바다에서 물질한 신선한 것들이라면서 이 할머니들에게서 소라, 미역 등을 산다.
그런데 며칠 전에 아내와 나는 이 길을 지나다가 해산물을 조금 사게 되었는데, 그날따라 우연히도 파는 해산물이 부족했다. 그런데 이 할머니는 조금만 기다리면 집에서 가져온 해산물을 가져온다면서 동문시장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나는 우연히 그 할머니가 가는 뒷모습을 보게 되었고 그 할머니는 수입품상점에서 사다가 장사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요즘 할머니들은 옛날 산업화 시대 할머니들이 아니다. 우리들의 소싯적 할머니, 할아버지는 삶의 중심이었다. 농경사회에서 자연은 매우 두려운 존재였고 혹독한 자연환경에서 의지 할 것은 선조대대로 쌓여온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지식과 지혜가 삶의 중심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식정보화시대로 진입된 지금은 실버푸어(Silver poor)의 신세로 견디는 세상이다.
지금 노인들은 자식들에게도 의지를 못하고 경제능력도 열악하여 생계형 범죄를 저지르거나 자살을 하는 경우도 쉽게 볼 수 있다.
대검찰청 2010년 범죄분석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고령화 사회에 진입하면서 노인 범죄도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65세 이상 노인범죄는 10년 전2.3%에서 2009년도에는 5.0%를 차지했다. 무려 두 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10년 동안 전체 범죄자는 9%늘었는데 노인 범죄는 240%증가 했다. 노인인구도 늘고 있지만 노인 범죄가 훨씬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는 것이다.
2007년 여름 전남 보성 앞바다에서 배에 탄 20대 여행객 남녀 4명을 살해한
범인도 70대 노인이었고, 2008년 국보 제1호 숭례문 방화범도 도시개발 보상비 감정에 불만을 품은 70대 노인이다.
또 얼마 전에는 인파가 몰리는 백화점이나 재래시장 등 서울 도심에서 행인의 지갑을 노리고 살아온 “할머니 소매치기단”4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요즘 노인 들은 자식들에게도 의지도 못하고 생활능력도 없어서 폭력적인 범죄로 이어지고 한편으로는 자살로 나타는 것이다. 우리나라 노인들의 자살 율은 OECD국가에서 1위다. 더나가 노인의 빈곤 율은 45%로 OECD평균보다 3배나 높다. 노인들의 곤경(silver poor)은 노인들 자신들도 문제지만, 우리들의 주변 곳곳에서 인간 경시사상의 시초를 만들고 있는 것이 더 문제다.
노인에 대한 경외지심(敬畏之心)은 농경사회에만 있었던 환상에 불과하다.
영국속담에 “한 노인이 사망하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Death of the old man is like a library burning)”과 같다고 했다. 우리 속담에도 "나라 상감님도 늙은이 대접은 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야말로 옛날 얘기일 뿐이다.
노인들의 곤경은 경제적 물질적 이유에서만 곤란한 처지인가? 아니다. 정신적으로 더욱더 문제다. 과거 산업사회의 노인가치관이 변했고, 예의와 서열을 중시하는 유교문화가 종말을 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No Country For Old Man이란 영화가 있다. “노인을 위한 나라가 아니다”라고 번역되어 상영되었지만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는 것이 작가의 본래 뜻이다. 우리의 현실도 실제로 그렇다.
현대는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지식과 기술이 발표되고, 새로운 제품과 시스템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컴퓨터와 각종 프로그램이 불과 수개월 만에 새로운 것이 나오고, 휴대폰도 자고나면 새로운 제품 광고를 보는 듯하다. 이것을 적응해야 할지 말지 고민하기보다 포기하는 편이 더 편할듯하기도 한다.
모르는 사람에게 맹(盲)자가 붙어 과거 글을 모르는 사람을 칭하는 문맹이라는 말에서 컴퓨터를 모르는 사람을 컴맹, 인터넷을 모르면 넷맹이 나오더니 이제는 스마트 휴대폰기능을 제대로 사용 못하는 폰맹이 생겼다.
이러한 사회에서 가장 큰 정신적 피해자는 노인이다. 노인은 오랜 과거 삶에 익숙해 있고, 새로운 문화를 쉽게 접할 기회가 적다. 더구나 새로운 문화와 생활도구가 쏟아져 나오니 적응하는 것이 힘들다. 그것이 소외의 원인이 되고 있다. 노인의 소외는 노동능력이 없거나 경제적으로 빈곤하거나 역할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세상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에 오는 소외감이다. 그렇다고 노인을 위해 세상의 변화를 멈출 수는 없다. 변화가 있어야 세상의 성장과 존재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노인들은 과거에서 탈피하여 현재를 수용해야한다. 새롭게 배움에 도전하면, 결코 사회로부터 소외당하지 않는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충분히 건강을 유지 할 수 있고, 또 새로운 인생을 여는 시작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리취 실버(rich silver)와 푸어실버(poor silver)의 길목은 어떠한 노년의 삶을 선택하느냐에 달려 있다. 자신들의 몫이다.
수필가 김 찬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