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시평] 생각하는 여유를

2011-05-29     김 찬 집


금방 무슨 일이라도 터질 것만 같다. 오늘신문의 헤드라인은 부산 저축은행 부패의 큰형은 정, 관계고위직이라는 기사다. TV 뉴스도 곧 큰일이라도 일어날 것 같은 논조다. 사회가 난장판이 되는 느낌이다. 사람들 얼굴엔 불안과 어두운 그림자가 가득하다. 요즘 서민들은 작은 일에도 쉽게 흥분하고 짜증을 내고 공격적으로 막 말을 한다. 우리들의 자율신경은 만성 흥분 상태로 견디고 있다.
조용한아침의 나라가 무색 하리만큼, 거칠고 조급 해지고 있다. 속 모르는 외국인들은 활력이 넘쳐 좋다고도 한다. 심지어 미국 오바마 대통령도 한국의 교육제도는 세계 최고라고 했다. 그런 면도 있다. 하지만 사람에겐 차분히 생각하는 분위기가 필요하다. 사회가 온통 술렁대고 들떠 있으니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생각하는 여유도 능력도 사라 졌다. 생각할 줄 모르는 국민에게는 미래도 없다는 말이 있다. 창의력은 깊은 생각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어수선한 사회 분위기는 생각할 기회를 박 탈 해 갔다. 이것이 오늘 우리사회다.
상층부가 더하다. 국회 고위공직후보자청문회에서 감동을 주는 자가 없다. 그래서 국민들은 이익을 위해 위선과 기만으로 너도 나도 부정에 몰려드는지도 모른다.
중고등학교 교육도 암기와 OX가 주류를 이룬다고 한다. TV 퀴즈처럼 물으면 생각할 겨를 이 없이 즉답이 나와야 한다. 아이들에게 스스로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는다. 학교 학원, 숙제도 숨 돌릴 틈이 없다. 거기다 TV 영상매체도 톡톡 튀는 아이로, 경박하고 깊이가 없는 마마보이 양산에 일조한다.
중산 서민들은 물가고, 교육비, 일자리 등 죽지 못해서 견디는데 가진 자, 즉 소득수준 상위20% 계층에서는 레저라는 바람을 타고 외국여행은 물론 숲과 나무들이 잇는 반반한 곳에는 어김없이 그들의 놀이 시설이다. 또 그들은 바캉스 계절이나 휴일에는 아주 온 강산을 음지와 양지의 양극화레저를 만든다.
거기다가 그들만이 줄기는 카페가 모여 있는 밤거리는 현란하게 번쩍거리는  네온사인 때문에 현기증을 일으킨다. 아늑한 분위기로 키워가야 할 제주도도 예외가 아니다. 술집들이 모여 있는 신 제주는 한심하기 짝이 없다. 우리나라에서 달란 주점이 인구대비 제일 많은 지역이 제주도다. 현란한 네온, 신제주 의 밤은 몸살을 앓고 있다. 가진 자들인 고급 관광객은 자선을 베푸는 자세로 흔들다가 돌아간다. 물론 이들을 모두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지만, 생각하는 여유는 없다는 말이다.
이런 경우를 빗대는 말로 적합할지는 모르지만, 영어(囹圄)에 삶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말로 ‘쥐의 경주(rat race)’라는 말이 있다. 독일의 어떤 심리 연구소에서 실제로 ‘쥐의 경주’를 실험 했다. 길 다란 튜브(Tube) 식 통로 한쪽 끝에 치즈 한 조각을 두고 입구로 여러 마리 쥐를 보낸다.
그러면 쥐들은 서로 치고받고, 밟고 밟히며 먼저 치즈를 차지하기 위해 민친 듯이 찍찍대며 앞만 보고 달린다. 그런데 그 모습이 서로 밟고 밟히며 무엇인가 먼저차지하려고 발버둥 치며 달인다. 지금 우리들의 살아가는 우리사회의 모습과 사뭇 닮은 모습과 똑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지금 부산저축은행 비리가 '쥐들의 경주(rat race)'와 똑같다는 생각이다.
나는 젊은 조카 벌 되는 젊은이들과 대화 할 때 나는 가끔 당혹감을 느낀다. 선배로서, 이웃집 아저씨 입장에서, 나는 그들에게 사람은 정직하고 의롭게 사라야 하고, 이 세상은 서로 사랑하고 나누며 살아가야 한다고 자신 있게 말해줘야 마땅함을 안다.
그러나 인생의 선배로서 나는 그렇게 자신 있게 말해 줄 수 없음을 절감 할 때가 가끔 있다. 지금 사회에서 큰 이슈가 되고 있는 저축은행 관련 부패와 같이 기회주의와 이기주의가 판치고, 서슴없이 남을 무자비하게 짓밟고 치즈를 차지하는 것이 ‘능력’으로 평가되는 이 세상에서 선하고 올곧게 사는 사람들이 도태되는 경우를 너무 많이 보아 왔기 때문이다.
며칠 전 밤에 케이블텔레비전 한 채널에서 지능 장애 청소년들이 육상 경기하는 모습을 본 기억이 있다. 5백 미터 경주에서 여남은 명의 선수가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달리기 시작했다. 얼마안가 두 명의 소년이 단연 선두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쟁을 벌였다.
그때 갑자기 한 명이 무언가에 걸려 넘어졌다. 그의 경쟁자는 잠깐 주춤하더니 뛰기를 멈추고 돌아서서 넘어진 선수를 일으켜 세웠다. 그 사이에 뒤쫓아 오던 선수들이 앞 다투어 경주를 끝냈고, 이들 둘은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만면에 웃음을 띤 채 맨 꼴찌로 들어 왔다. 프로그램의 제목은 ‘Winner’였다.
하지만 ‘시대정신, 공정사회, 선진사회’를 슬로건으로 삼는 이 세상, IQ 세 자릿수인 고소득을 손에 쥔 사람들이 ‘쥐의 경주’를 벌리고 있는 이 세상에서 이들이 과연 ‘승리자’들이 될 수 있을까.
그러나 그 대답은 우리들의 삶에서 진정한 승리란 무엇인가에 따라 뻔뻔한 승리자이거나 부끄러운 승리자로 구분되어 대답 할 것이다.


수필가 김 찬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