꺾기, 관행인가
한마디로 경제가 엉망이다. 제주 지역경제 역시 침체일로이다. 특히 노동으로 소득을 얻어야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서민들에게 그 고통은 더욱 심각하다. 소득 증대, 소비 급증, 내수 활황, 기업수익 증대, 투자 확대, 생산 및 고용 증가, 소득 증대의 선순환을 이루지 못하는 경제가 동맥경화증 내지 빈혈에 걸린 형국이라는 것이다. 경제를 논할 때 흔히 인용되는 한자성어가 경세제민(經世濟民).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구제한다는 뜻이다.
장자(莊子)의 제물론편에 나오는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할 때 제주도에는 경제가 없다. 옛날식으로 말하면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구제할 생각은 커녕 가렴주구로 일관하는 게 아닌가 의구심이 들 정도이다. 물가인상이 가계를 압박하고 공공요금도 줄줄이 인상러시다. 재래시장이나 중소기업 생산라인에 활력은 고사하고 관광산업마저 시들해지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버젓이 행해지는 제주도의 주먹구구식 행정은 보기에 아슬아슬하다 못해 아찔하다.
제주도 행정, 계획성 있나
의지부족이나 무계획으로 인해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다. 문제를 더 키우는 것을 종종 본다. 무계획의 계획이라는 말이 풍미하던 시대가 있었다. 무엇이든지 힘으로 밀어붙이면 성사되던 시절 얘기이다. 강한 의지의 소산일 터이다.
의지마저 없다면 대개 실패로 돌아가고 만다. 2003년에 「함께하는 시민행동」이라는 시민단체에서 충청남도에 시상했던 ‘밑빠진 독 상’을 기억한다. 관 주도 사업의 병폐인 무계획 무책임 경영을 문제시했던 것이다.
주먹구구식 계획과 방만한 운영, 만연한 부정부패가 만들어낸 결과라는 사실이 밝혀진 바 있다. 2004년도, 이 상은 재정경제부에 돌아갔는데 일제시대에 머물러 있는 국유지 관리가 문제됐다 한다. 철저한 계획을 세워도 모자랄 판에 무계획 무소신으로 일관하고 있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한라산 경관화보집을 주목한다
자치단체장의 성향과 행정의 투명성에 관한 연구과제를 수행하다가 제주도 홈페이지 입찰정보를 관찰하게 됐다. 12월 7일자로 뜬 ‘한라산천연보호구역 경관화보집 제작 입찰공고’를 눈여겨 보게 되었다. 최저가 낙찰을 조건으로 한 입찰예정가격은 16절 4천부 제작에 부가세 포함 7천9백8십여만원이었다.
경관화보집을 제작한다면 적어도 페이지와 지질 정도는 제시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또한 작품성 있는 경관화보집을 만들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최저가 낙찰은 말이 안된다는 의아심을 갖고 있는 중에 이틀 후에 변경공고를 낸 것을 보았다. 슬그머니 입찰예정가격에 사진대여료 2천2백만원과 부가세 포함이라는 단서조항을 붙여 넣은 것이었다.
워낙 불경기라 제작능력이 있는 인쇄업체들은 전자입찰에 응했고 5천2백9만원을 적어 낸 업체가 최저가 낙찰됐다고 전해 들었다. 사진대여료와 부가세를 제하면 2천5백만원에 사업을 맡은 셈이다. 배보다 배꼽이 큰 그야말로 원가 배팅이다. 응찰업체 몇몇을 인터뷰한 결과, 말이 안된다는 것이었다. 그 정도의 작업이라면 3천만원 이상은 되어야 인건비 등을 포함해 플러스 알파가 된다는 것이다.
놀리면 뭐하나, 인쇄기와 인력을 가동하자는 심사로 원가 응찰한 것으로 이해되기는 했다. 결국 시행처 보유사진 임대료만 받아 챙기는 사업이 되고 말았다. 행정기관 입찰에서 행해지는 꺾기 치고는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관행이 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한라산 경관 사진이 시행처에 보관된 것이 전부이냐 하는 것이다.
전문적으로 한라산 경관 촬영을 해오고 있는 사진작가는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작품성 있는 사진들을 찾아서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마저 차단해 버리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대로 된 경관화보집이 나올 수 있을지. 도정 책임자가 경영마인드를 강조하기 때문에 궁여지책으로 낸 변경공고인가 생각도 해보지만 이해되지 않는 구석이 많다.
사진임대료는 결국 제주도 수익으로 돌아가서 도민을 위하는 좋은 사업에 쓰이게 될 것인지도 자못 궁금하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 했다. 잘못된 관행은 바로 잡아야 한다. 불현듯 “금동이 향기로운 술은 일만 백성의 피요/옥소반 아름다운 안주는 일만 백성의 기름이라/촛농 떨어질 때 백성 눈물 떨어지고/노래가락 높은 곳에 원망 소리 높았더라.”는 춘향전 한 대목이 떠오르는 것은 무슨 연유인지 모르겠다.
안 창 흡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