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事多思] 고독한 밤의 기도
사람은 저마다 무거운 짐, 가벼운 짐, 을 지고 태어난다는 말이 있다. 먼저 세상을 떠난 가족생각, 부모님에 대한 불효의 뉘우침, 먼저 유명을 달리한 친우에 대한 죄스러움 등의 저마다 짐을 지고 살아간다. 이런 삶의 짐들은 밤에 더욱 무거워진다.
이 무거운 짐은 고독한 밤의 기도가 되여 하얀 밤을 만든다. 유명을 달리한 가족을 기리고, 자신의 어리석은 욕심에 대한 반성은 인간의 원초적인 인지상정(人之常情)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고독은 남들의 나에 대한 무관심을 의식 할 때 찾아오는 것을 경험한다. 여러 사람과 일상을 하는 낮에 보다도 밤에 더 고독한 쓸쓸함이 엄습해 온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언제나 타인과의 이해관계를 맺고 상호의존관계를 지며 산다. 학교 동창이 그렇고, 직장동료가 그렇고, 이웃사촌이 그렇고, 친족관계가 그렇다. 상호의존관계다. 그러나 이들 관계에서 도움을 꼭 필요로 하는 극한상황에서 관계자들의 무관심을 느끼게 된다. 이럴 때가 고독한 밤이 된다.
이런 고독한 밤에 나는 쓸쓸하고 외로움을 벗어나기 위해 순수한 기도를 하는 버릇이 있다.
물론 나만이 아니라 어느 누구도 진정한 기도를 한 경험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 기도는 이해관계를 이익 되게 해 달라는 어떤 절대적인 대상에게 매달리며 애걸하는 기도가 아니다. 좋게 해 달라고 애걸하는 기도는 이기적인 욕심이다. 이 세상에 있는 그 어떠한 종교라도 그런 이기적인 기도를 들어 준다고 하는 종교는 단 하나도 없을 것이다. 불교, 천주교, 기독교, 이스람교 등의 최고 공덕은 청빈과 희생이다. 청빈은 무욕이고, 희생은 고행이다. 그래서 고독한 밤의 기도는 욕심을 내지 않게 해달라고 하는 기도다. 고독한 밤을 고요하고 포근한 밤을 주십사 하는 기도다.
우리들은 그동안 고시합격, 수능시험, 부자 되게 해달라는 등 자신에게 행운을 비는 기도를 하며 살아왔다. 그런 식의 일방적인 기도는 기도가 아니고 욕심의 발로일 뿐이다. 그런 기도는 어리석고 파렴치하고 이기적인 기도다. 고독한 밤에 순수한 기도는 자기수련의 배움이라고 생각하면서 자기반성의 기도다. 새로운 느낌과 새로운 의미로 성실한 삶을 꾸려날 것을 결심하는 기도다.
종교계의 거성인 간디의 기도스타일을 빌리면 간디는 회의를 하다가도 바닥에 끓어 앉아 기도를 했었다. 그는 아침에 밥 먹는 것은 잊어버려도 하루에 두 번씩 드리는 기도는 절대로 잊어버리는 일은 없었다고 한다.
간디와 같이 우리의 일상에 기도가 필요한 것은 삶의 수양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종교를 가졌건, 안 가졌건 한평생 몇 차례씩의 진정하고 순수한 기도를 해본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인생살이는 우리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할 도리가 없는 불가항력적인 어려운 처지에 빠지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 할 수 없는 비극적이고 절망적인 상황에 쳐 했을 때, 우리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두 손을 가슴에 모아 대고 하느님을 우러르거나 합장을 하고 엎드려 절대자에 매달인 다.
그 때 마음속에서 절실하게 갈구하는 것, 그 것이 바로 진정으로 순수한 기도 일 것이다.
자식의 절망스러운 병 앞에서 어머니가 합장하는 모습, 부모의 운명 앞에서 자식들의 합장하는 모습, 이것이 순수한 기도다. 진정으로 순수한 기도는 절박하고 처참하며 억장이 무너지는 좌절감에서 나타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들은 누구나 피 할 수 없는 필연적인 죽음 앞에서, 고독한 밤에 기도로 탈출구를 찾아지는 것도 인지상정이다.
고독한 밤의 기도는 아무도 대신 할 수 없다. 나는 고독한 밤의 기도로 나의 삶, 나의 행동, 나의 영광과 수치, 나의 유일성(惟一性)등을 발견한다.
나는 고독한 밤에 기도 속에서 나의 원초적인 적나라한 자아, 모든 껍데기를 훌훌 벗은 벌거숭이 자아와 자주직면 한다. 고독한 밤의 기도는 자아를 밝혀주는 조명이다. 내가 누구를 대신 반성 할 수 없듯이 아무도 나를 대신 해 줄 수도 없다. 내가 남을 대신 살 수 있고 남이 나를 대신 살 수 있다면 그것은 대신 살아준 사람의 삶이지 자신의 삶의 아니다.
만일 남이 대신 죽을 수 있다면 그 죽음은 남의 죽음이지 나의 죽음이 아니다. 사람은 자신의 삶과 죽음은 유일무이하며 따라서 인간은 고독한 밤의 기도를 아니 할 수 없는 것이다.
고독한 밤의 기도는 풍요를 가져온다. 잠시 군중으로부터 떨어져서, 잠시 일상적 관심을 떠나서, 잠시 고독에 파묻혀 기도를 드릴 때 우리는 새로운 자아를, 참다운 이존 관계 남들을, 남들과 나와의 올바른 관계를 생각 할 수 있고 알게 된다. 고독한 밤의 기도를 모르는 사람은 고독한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고독한 밤의 기도를 경험해보지 않는 사람은 너무나 삭막할 것만 같다. 한과 좌절이라는 마음 밭의 거름이 생산 안 되기 때문이다.
수필가 김 찬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