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事多思] 영혼의 나이

2011-04-13     공옥자

 

사월은 봄의 절정, 꽃들이 다투어 피어나고 있다. 올해는 꽃마다 그 색이 맑고 선명하다. 혹독한 냉기에 상처를 받았던 지난해의 꽃들이 아니라 저마다 최상의 빛으로 단장하여 아름다움이 빛을 뿜는다. 백목련의 순백이 눈 시리고 개나리꽃의 노랑이 황홀하다.
벚꽃이 흐드러진 길을 걷다가 문득 ‘벚나무 가지를 쪼개어 봐도 그 속에 벚꽃은 없다.’는 시 구가 생각났다. 너무도 당연한 사실에 의문을 던진 놀라움, 물론 꽃은 쪼개진 가지 속에 없다. 자연이라고 부르는 우주가 개입하여 꽃의 발화가 일어났을 뿐. ‘더 많은 황금알을 얻으려는 욕심에 거위의 배를 갈랐는데 그 속에 황금알이 없었다.’는 우화를 연상시키는 이 시는 물과 바람, 먹이와 햇살과 시간이 서로 조우하여 만들어 내는 생명의 신비를 극명하게 들춘다. 사람의 육체를 쪼개어 봐도 마음이 있는 곳을  찾을 수 없으니 인간에게 마음은 없다고 할 수 없듯이 생명현상은 물체에 깃든 생기에 의한 조화가 아닌가. 그 생기가 영원성에 닿아있다는 것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오로지 생기가 삶의 본질임을 알더라도.
영혼엔 나이가 없다는 말을 들었다. 나이란 물리적 삶에만 흔적을 남기는가. 시간도 간섭하지 못하는, 영혼을 생각해 낸 사람은 누구일까.
나이 먹는 게 기쁘게 느껴지던 일은 아마 이십대 초반까지였지 싶다. 세월이 줄달음으로 달아나서 마음이 나이를 따라 잡지 못하여 허덕이며 어느새 노년에 이르렀다. 어린 시절엔 그리도 길던 하루가 화살처럼 날아간다. 시간이 빠르고 덧없다고 푸념하면서도 세상엔 시간이 어서 가기를 원하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다. 아가들이 빨리 자랐으면 싶은 엄마, 회복을 염원하는 환자, 수확을 꿈꾸는 농부, 무엇 보다 출소를 앞둔 수인, 앞날에 좋은 일을 예약해 놓은 사람으로 세상이 북적인다. 삶은 시간의 율동으로 추는 춤인 것이다. 그 춤에 취해  출렁이며 살다가 어느 날 문득 한 생이 기우는 걸 깨닫고 화들짝 놀란다. 결코 기다린 적 없던 노년이 코앞에 당도해 있음을 느낄 때가 오는 것이다.
노년을 사랑하고 기뻐할 사람이 대체 얼마나 될까.
살아보니 가장 행복한 시절이 노년이라면 동의 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삶의 의무와 책임을 벗어난 자유로움은 적지 않은 축복이다. 고단한 생애동안 우리가 언제 이만한 여유를 가진 적이 있었던가. 욕망을 접고 매 순간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본다면 육체의 나이가 반드시 장애는 아닌 듯하다. 수십 년 써먹은 몸의 기관들이 자주 탈이 나서 고통스럽고 주름진 얼굴엔 청춘의 영광이 없더라도 살아낸 삶의 후광은 잘 익은 열매가 아닐까.

영혼엔 나이가 없다는 말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삶에 치여 병들고 쇠잔해진 육체를 던지고 나서 싱그러운 영혼으로 남는다면, 더 바라 볼 것 없는 육체를 벗어나는 일이 기쁠 것이다.
디팩 초프라는 <죽음 이후의 삶>에서 정신은 두뇌를 송수신 장치로 삼아 움직이는 뇌 세포의 미묘한 파장이라고 했다. 뇌는 컴퓨터가 외부의 서버에서 정보를 가져오듯 눈에 보이는 삶의 현상을 넘어 우주와의 교신에 의해 그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우주 생물학에서는 별에서 방출 된 분자들이 지구 생명체의 시작에 일정한 영향을 미쳤음을 알아냈다고 한다. 인간 몸의 기원이 별의 잔해애서 비롯되었다면 인간은 머나 먼 별의 자녀라서 그 교신이 가능할 것도 같다. 사실 인류에게 공헌한 사람들의 일화 속에는 이 말을 뒷받침할만한 사례가 많다. 이 시대에도 찾아 볼 수 있지만 아득한 고대로 부터  예언자,  주술사, 인간의 이성으로 해석이 불가능한 천재성을 발휘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초월적 체험이나 신의 계시를 증언한다. 그들의 영감(靈感)을 통한 업적이  인간 의식을 상승시켜 왔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간혹 평범한 사람들도 생의 어느 지점, 절대 절명의 순간에 무릎을 꿇어 초월의 힘에 기대지 않던가. 
육체가 해체 된 후에도 겪어 낸 체험과 터득한 지혜를 고스란히 유지함으로써 진보를 거듭해 간다는 것은 죽음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는 엄청난 소식이다. 고장 난 컴퓨터를 교체하듯 육체를 바꾸며 끝없이 향진하는 영혼, 거기 더하여 영혼은 지상에서 잠간씩 맛본 희열이나 지복의 상태에 놓인다는 기막힌 메시지도 있었다.
종교나 과학이 접근을 시도하고 있는 사후(死後)의 비의(秘意)가  커튼 한 자락을 열어 미소를 보내는 느낌이 들었다.
소멸을 건너 순환 속에서 나이가 없는 영혼이라니......,가슴이 뜨거웠다.
열흘 남짓 피었다가 지고 마는 꽃들도 잠시 그 모습을 감추지만 가지 속에 깃든 꽃의 잠재력은 더 풍성한 개화를 꿈꾸며 수많은 봄을 기다리지 않겠는가.
하물며 사람이랴.

수필가 공 옥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