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事多思] 노인과 옹고집

2011-03-08     고훈식

노인이라는 말이 심히 불쾌하다. 불쾌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사실이 슬프다. 슬프다고 말해본들 슬픔이 가증되기 전에 노인이라는 말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다. 노인의 고집은 옹고집이라고 한다. 그다지 좋은 고집이 아니기에 나쁜 의미로 쓰임새가 많다. 노인이라는 의미를 수용해야 한다면 옹고집이라는 말도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노인이 되도록 오래 살았으니 지상에 숟가락 하나라도 남겨야 하지 않겠는가.
우선 ‘老’라는 한자를 깊이 들여다본다. 흙이라는 뜻인 土(토)아래 빗금이 하나 그어져 있고 그 아래 비수가 들어 있는 형상이다. 즉 칼이라는 뜻인 匕(비)자를 합쳐 ‘老’가 되었는데 왜 늙은이라는 뜻에 칼을 품게 되는지 나도 노인이 되면서 신경이 쓰였다.
‘老’의 빗금은 교묘하게도 절반은 땅을 파고 들어가서 지상과 지하를 연결한 형상으로 ‘살면서도 죽음을 생각하라’는 화두를 주는 것 같다. 또한 땅 속에 들어가는 것은 한이나 원이므로 비수를 가슴에 꽂듯이 절대 죽음으로 견디라는 철학이 숨어 있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이미 반은 죽은 상태라는 것이다.
그래서 ‘人’은 너와 내가 서로 등을 기대고 있는 모습이라 내가 노인이 되듯 너도 노인이 되고, 노인들은 모두 죽어 비수만 품는다는 ‘老人’의 뜻이 완성된다.
이제 옹고집을 말하겠다. ‘옹고집’이라는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퍼뜩 ‘옹골찬 고집’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옹골차다’라는 말을 어떻게 하면 탁 트이게 보여줄 수 있을까. 내 혈관을 흐르는 흰피톨이라고 할까? 아니다. 덜 늙은 사람은 얼른 눈치 채지 못하니까 폐광 속에 묻혀 있는 금괴라고 하면 훨씬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사실 고집은 집념이 굳어져서 바위처럼 단단해진 물체이다. 나름대로 육십 평생을 살다보면 삶도 허무도 아무 것도 아님을 알게 된다. 한편으로는 ‘악도 일단을 긍정한다.’는 명언도 깨닫게 된다. 태아로 생성되는 것 자체가 피동이었으니 세상 떠남도 순전히 피동인 관계로 자신이 걸어온 길 고백하노니 시작은 악이었다. 다행히 오래 살아서 노인이 되고나니 악이 끝나는 지점에 선이 있음을 비로소 깨달았고 ‘세월이 나를 부린다.’라는 체험이 나를 붙잡는다.
나처럼 오래 살 그대들을 위하여 상황을 설명하겠다. 나는 시인이다. 시를 많이 썼다. 시인이라서 돈을 벌지 못하는 일로는 악업(惡業)이었지만 시 쓰는 일이 좋아서, 시라도 많이 써야만 게으름을 감출 수 있었기에 평생 썼다. 작품의 질이 문제이긴 하지만 저절로 시가 떠오른다. 참으로 금맥을 발견한 탄광업자라고나 할까. 평생을 가꾼 과수원에서 절로 익은 과육을 그냥 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연륜(年輪)이 쌓이면 쌓일수록 추구한 것은 더욱 심화되어 신선의 경지 비슷한 지점에 이른다고나 할까.
 나이가 잔뜩 쌓인 세월이라 뇌 세포도 많이 죽은 상태가 되므로 새로 시작하는 일은 미완으로 끝나기 십상이지만, 그럴 노력이면 자신의 전공분야를 심화하는 것이 훨씬 능률적이다. 노인더러 살아있는 귀신이라는 말도 이럴 때 쓴다.
몇 년 전, 환갑 기념으로 세 가지 조항을 설정하였다. 아프지 말 것. 빚이 없을 것. 원한을 사지 말 것. 아프면 물결 소리도 신음 소리, 빚이 있으면 평생 노예, 젊은 시절에 남의 가슴을 아프게 한 죄는 양심에 남아서 마음대로 눈감기가 상당히 괴로우리라.
그러나 사람을 아끼는 마음만은 예외 조항으로 설치했다. 비록 타인 때문에 일생을 망쳤다고 할지라도 오래 살았으니 잊지는 못하나 평상심을 키울 수 있는 관용을 지닐 것. 그 장치는 무관심이다. 무관심은 무관심이지 미움이거나 편애는 아니다.
노인의 고집은 되도록 옹골차야 하는 이유로는 얼마 남지 않은 삶을 마무리하기 위한 최후의 저항이다. 그러나 길게 잡아서는 곤란하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스스로 걸어서 윗세오름이라도 오를 수 있는 칠십대 중반에 기꺼이 명예를 양보하고 빈손으로 떠날 채비를 미리 서두르는 것이 좋겠다. 옹골찬 고집이 아집이 되면 상상을 초월하는 거룩함도 있겠으나 죽은 나무에 자생하는 구더기도 될 수 있으니 명심할 일이다.

시인 고 훈 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