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멀쩡

2011-03-06     김종현

중동의 민주화 바람은 세상이 이렇게 급변할 수 있는지 새삼 놀라게 만든다. 튀니지에서 시작해 이집트, 리비아에 이른 중동의 거대한 민주화 물결이 세계 역사를 바꾸고 있다. 민주주의를 갈구하는 시민 수천명이 목숨을 잃었고 프랑스 혁명을 연상시키는 시민의 목소리는 모로코, 요르단, 이란, 알제리까지 확산되고 있다.
대부분 왕정 국가인 중동은 왕정이 들어선 지난 40여년간 외부에는(적어도 나에게는) 별다른 문제가 없는 평온한 국가로만 여겨졌다. 민주국가가 대세인 20세기에 왕정 국가가 있다는 것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이들 나라들은 버젓이 왕을 모시고 살아왔다. 상점마다 왕의 사진이 걸려 있고 수시로 왕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는 모습에 외부인들은 놀라게 된다. 무력통치를 기막히게 잘하거나 아니면 석유를 이용한 경제발전으로 국민들을 유혹했을 것이라는 판단을 내린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통해 드러난 그 나라의 속사정은 멀쩡하지 않았다. 언론에 따르면 이번 중동 민주화 폭풍의 원인은 기본적으로 빵과 자유에 대한 갈망, 권력사유화에 대한 반기라고 한다. 결국 그동안의 왕정은 빵과 자유도 주지 못했고 거대 권력을 이용해 사리사욕만 채웠음을 보여준 것이다. 민주화 운동이 이렇게 급속하게 번져 나간 또 하나의 이유는 정보의 독점을 깨뜨린 인터넷이라고 한다. 정부가 관영매체를 통해 정보를 통제하더라도 사람들은 인터넷으로 진실을 접하고 분노한 것이다. 중동 지역은 오랜 가부장적 부족주의의 전통과 절대 권력에 대한 순응 경향으로 이런 민주혁명은 힘들 것으로 여겨졌지만 인터넷은 부정을 눈감지 않았던 것이다.
한국 국민들은 5.18 광주 사태를 겪었기 때문에 민주화를 위한 희생이 얼마나 가슴 아픈 것인지, 얼마나 가치있는 일인지 알고 있다. 국민들을 사랑하지 않는 지도자가 정권 유지를 위해 얼마나 무자비하게 국민들을 탄압 할 수 있는지 이미 경험했다. 자신의 사욕만 채우던 정권이 하루 아침에 망해가는 것이 한편으로는 박수를 칠 일이지만 그 희생은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것처럼 너무 크다. 이런 희생을 치르지 않기 위해서는 국민 모두가 정치지도자나 정권 선택에 혼을 다해야 한다. ‘나 아니라도 누군가 투표를 잘 하겠지’, ‘나는 정치는 골치아프고 모르니까 다른 사람들이 뽑아 놓은대로 따라 가면 되지’하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
학자들에 따르면 멀쩡한 것 같은 사람들이 옳지 않은 행동을 하는 이유는 도덕성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도덕성이 어설프고 수준이 낮기 때문이라고 한다. 진정으로 무서운 것은 비도덕적인 사람이 아니라 수준낮은 도덕에 집착하는 사람들이라고.
중동 사태를 보면서 또 하나 생각할 것은 언론의 자유이다. 우리는 쉽게 대중의 생각에 편승한다. 중동 사람들도 이번 사태가 발생하기 전까지는 왕정에 대체로 수긍했을 수도 있다. 일부 반체제 인사들이 반정부 활동을 벌이더라도 언론에는 거의 소개되지 않았을 것이다. 대부분의 독재정권은 언론의 자유를 통제하는데 그 이유가 만장일치의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라고 한다. 독재정권을 반대하거나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언론을 통제해 정권을 홍보하는 사람들의 의견만 보도한다면 사람들은 쉽게 언론의 주장에 따르게 된다. 하지만 언론의 자유만 보장된다면 사람들이 어리석은 대중이 될 가능성은 줄어든다. 이집트에서는 반정부시위자들에게 ‘혼란을 야기하지 말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애국’이라고 하던 관영 텔레비전이 무바라크가 물러가고 혁명이 성공한 듯 하자 바로 말을 바꿔 ‘위대한 시민 혁명’ 운운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언론은 특히 텔레비전은 부디 멀쩡하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