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시평] ‘소’와 구제역
“네 커다란 검은 눈에는/ 슬픈 하늘이 비치고/ 그 하늘 속에 내가 있고나/ 어리석음이 어찌하여/ 어진 것이 되느냐?/ 때로 지긋이 눈을 감는 버릇을/ 너와 더불어/ 오래 익히었고나” 시인 김종길의 시 「소」의 전문이다.
소의 모습에는 긴장감이나 성급함을 찾아볼 수 없다. 순박한 눈동자에는 평화로움이 깃들여있다. 소는 일을 돕는 짐승으로 부를 상징했다. 마을의 별신굿이나 장승제에서 소가 희생의 재물로 쓰였고, 소뼈는 잡귀를 쫓는 부적이었다.
이순원의 소설『워낭』은 우리와 생업을 함께하며 살아온 소의 내력을 통해 인간세계를 바라보는 작품이다. 소와 사람과 그들이 함께 일군 대지와 쟁기의 삶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 강원도 깊은 시골, 우추리 차무집 외양간에 어미와 생이별한 그릿소가 들어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특히 소를 내 가족처럼 아끼는 차무집의 내력이 아름답게 그려진다. 한 집안의 외양간을 지켜온 소의 12대에 걸친 역사와, 노비제도 폐지에서 2008년 광화문에 물결치던 촛불시위까지 4대에 걸친 사람의 역사가 담백한 문장으로 빚어내는 이순원 특유의 서정성이 은근하면서도 묵직한 감동을 선사한다.
지금 구제역(口蹄疫)이 한반도를 뒤덮고 있다. 소, 돼지 등만 수만 마리가 살처분 당하고 있다. 조류독감으로 인해 집단 매장되는 닭이나 오리는 얼마나 많은지 집계도 안 된다. 소의 경우에만 2000년 이후 구제역과 브루셀라 병으로 해마다 수 천 마리씩 살처분되었다. 이번의 구제역으로 인한 소의 살처분은 수만 마리가 넘고 돼지는 수도 없이 살처분되었다.
성서를 다시 읽어보자. 하느님께서는 태초에 만물을 창조하시며 땅 위에 온갖 생물들도 창조하셨다. 집짐승과 들짐승,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을 기어 다니는 온갖 것을 만드셨다. 하느님께서 모든 생물들을 보시고 좋았다고 하셨다. 또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온갖 생물을 다스리는 역할을 주셨다.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우고 지배하여라. 그리고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을 기어 다니는 온갖 생물을 다스려라.”(창세기 1,28) 하느님께서 다스리라고 하신 것은 온갖 생물이 그 고유의 존재 가치와 아름다움을 잘 유지하고 보존할 수 있도록 지켜주고 보살피라는 말씀이다.
하느님께서 인간이 다른 피조물들을 다스리라고 하셨을 때에는 인간 이외의 피조물들도 그런 다스림으로 아끼고 보존할 것을 원하신 것이다. 땅위에 인간이 타락하여 폭력으로 가득 차 있을 때 홍수가 일어났다. 하느님께서는 노아의 식구들과 함께 방주에 온갖 생물들을 한 쌍씩 집어넣으시고, 노아와 ‘함께 살아남게’ 하셨다.(창세기 6,17-20) 홍수가 끝난 다음 하느님께서는 노아와 그 가족과 함께 모든 생물들이 ‘땅에 우글거리며 번식하고 번성하게 하여라.’(창세기 8,17) 하고 축복하셨다.
소를 키우는 농민시인 조인선은 백신예방 접종에도 불구하고 구제역으로 한우 50마리를 모두 땅에 파묻어야 했다. 조인선 시인은 소들을 추모하는 「구제역」이라는 시를 썼다.
“소들이 죽어갈 때 나는 머리 굴리고 있었다/ 보상금청구서에 도장을 찍고 담배 피우려 나오는데/ 포크레인에 걸린 암소 두 마리 구덩이로 향한다/ 그렇게 땅이 메워지고 모든 게 끝났지만/ 언어는 왜 그리 매혹적인지/ 빈 축사에 들어서면/ 텅 빈 말씀이 가득했다/ 그곳엔 어떤 깨달음도 후회도 없었다/ 그게 이상하고 하도 속상해 잠도 오지 않았지만/ 마음도 풀 겸 그짓하고 나서/ 지갑 속에 돈을 두 번이나 확인하는데/ 점점 비워지고 채우는 게 내 욕망인 것만 같아/ 괜히 웃음만 나왔다”
소설가 김 관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