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김정일 위원장께
저는 대한민국의 남단 제주도에 사는 평범한 할머니입니다. 오래전부터 제 마음에 품고 있는 의문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워낙에 소통하기 어려운 분임을 알지만 인터넷으로 열린 세상인지라 남한 사정을 열심히 보고하는 당신의 일꾼들이 혹시 당신에게 전달하지 않을까하는 기대로 편지를 씁니다. 북과 남이 두 동강으로 나뉘어 반세기가 넘습니다. 북쪽이나 남쪽 어느 누구도 나라가 반으로 쪼개어 살기를 원하지 않고 있는데도 오늘까지 화합하지 못하여 한스럽습니다.
저는 1938년 생으로 초등학교 5학년 여름에 6,25전쟁을 목포에서 겪었습니다. 대동아 전쟁의 막바지쯤 제주에서 한판 승부를 벌리려던 일본은 제주도 일대를 돌며 굴을 파서 진지구축을 했습니다. 일본 선생님은 학생들의 집집을 방문하면서 본토로 피난을 가도록 했습니다. 부모님은 선생의 권유에 따라 목포로 나갔습니다. 그 곳에서 동족상잔의 6,25전쟁을 겪게 된 것입니다.
그날 일요일, 대한민국의 고위 장교나 사병들이 휴가를 나온 참이었습니다. 6,25를 북침이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압니다. 당신들은 머리가 좋습니다. 휴일을 즐기는 미군과 한국군의 습성을 이용한 남침이었어요.
제주도 특산물을 거래하시던 제 아버지가, 많은 물량의 상품을 보내 놓고 확인 겸 서울에 막 도착하던 날이었습니다. 물건을 인수하지도 못하고 전차 바퀴의 굉음에 혼비백산 쫓기 듯 한강다리를 건너며 몇 번이나 자살을 생각했다고 합니다. 평생의 재산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을 견디기가 어려우셨지요.
목포까지 밀고 내려 온 당신의 군대를 보았습니다. 함께 온 선무공작대와 당신들의 사상에 몰입하던 몇몇 선생님들이 앞장서서 학생들을 불러들였고 우리는 학교에서 침략을 정당화하는 열띤 강연도 들었습니다.
<아침은 빛나라 이강산 은금의 보화도 가득 찬 삼천리 아름다운 강산에>라고 시작되는 당신들의 애국가와 <붉은 깃발을 높이 들어라>등의 가사로 된 군가도 배웠습니다. 특히 공산사상이 얼마나 합리적이고 우월한가를 힘써 가르쳤습니다. 그때 목포에 머무는 동안 당신들이 한 일을 선명하게 기억합니다. 참으로 끔직 했던 일은 당신들이 후퇴하면서 참 많은 사람을 사살 했습니다. 제가 살던 집 길 건너 외국인 선교사님들이 있었는데 피난길에서 와 보니 선교사님들의 시신이 즐비했어요. 기독교에 대한 증오가 심했습니다. 얼마 전 한 목사가 월북했다가 돌아와서 당신들을 찬양하고 선동하는 모습을 보며 웃음이 절로 나왔습니다.
김 위원장님, 지금은 기독교를 좋아하시나요? 혹시 남쪽 기독교세력의 막강한 힘을 의식한 제스처일까요? 기독교의 구약성서는 이스라엘 역사서입니다. 사무엘상에는 재정일치시대인 사사의 통치를 넘어서서 왕의 시대로 건너가던 초기에 두 지도자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초대 왕인 사울은 겸손하고 두려운 태도로 임금의 자리에 올라 민족을 집결시키고 용맹을 떨쳤습니다. 철기로 무장한 주변국들과 끊임없는 싸움에 시달렸는데 위기의 순간에 다윗이라는 젊은 목동의 도움으로 큰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들에서 양을 치던 이 목자는 사나운 들짐승의 습격을 막아내고 자신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조약돌을 정확히 급소에 맞히는 훈련이 되어 있었지요. 그는 돌 하나로 적장의 이마를 뚫었습니다. 다윗에 대한 백성들의 칭송이 높아지자 왕은 질투에 사로잡혀 다윗을 적으로 간주하여 죽이기로 작정합니다. 자기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사람을 원수로 내 몰았던 것입니다. 사울왕은 다윗을 쫓느라 헛된 시간과 힘을 낭비하여 비참한 최후를 맞습니다.
인간의 어리석음은 그 시대나 이제나 다르지 않아요. 나는 당신이 사울이고 남한이 다윗과 같다는 걸 말하고 있는 겁니다. 당신은 북한 주민들이 우러러 경외하는 위대한 지도자입니다. 그러나 한국에 대한 그 간의 적의는 전혀 위대한 사람의 선택이 아닙니다. 자기에게 누가 참된 친구가 될 것인지 분별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그러합니다.
위원장님, 생각해 보세요. 지금 이지구상에서 당신의 국가, 당신의 백성을 가장 절실하게 진심으로 사랑해줄 나라가 대한민국 말고 또 어디에 있는지를! 중국을 형님처럼 의지한다는 걸압니다. 중국은 거의 모든 나라가 외면하고 있는 이 시대에, 유일하게 당신들을 지지하고 도와주는 나라입니다. 하더라도 그들의 계산 된 호의를 혈족인 남쪽 사람들의 절절한 심정과 비교할 수 있을까요? 그걸 모른다면 어떻게 사람이겠습니까? 중국은 그렇게 엄청난 땅덩어리를 가졌으면서도 욕심이 끝이 없어 보입니다. 당신의 나라에 매장되어 있는 지하자원을 넘보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북과 남이 하나 되어 함께 개발해간다면 남북의 백성들이 백년을 먹고 살 자원이 땅속에 묻혀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자원이 야금야금 중국의 손으로 건너가고 있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보고만 있어야 하는 우리는 통한의 심정입니다
친애하는 위원장님, 분단 육십 육년 어간에 남한에서 북쪽을 괴롭힌 적이 있던가요? 누구를 암살하거나 폭파하거나 타격을 가한 일이 있었나요? 잊지 않으셨지요? 전두환 대통령당시 아웅산 폭탄 테러. KAL기 폭파사건, 휴전선 미루나무 사건, 김평조 일당의 청와대 습격기도, 최근 천안함 폭침, 연평도폭격, 그때마다. 얼굴에 철판 깔고 오리발 내어 밀기, 우리가 그렇게 철천지원수일까요?
핵폭탄 열심히 만들어서 남한을 불바다 만들면 초토화 된 남한 땅 하늘에서 이밥에 고깃국이 저절로 떨어집니까. 정말 그렇게 믿습니까? 대답해 보세요. 제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인내하고 견디고 용서까지 하면서 당신들을 도우려고 안간힘을 썼습니다. 역대 몇 대한민국 대통령이 햇빛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물심양면 힘쓰고 애써 노력했던 사실을 잊지 않으셨지요? 이산가족 상봉 때마다 남쪽 사람들이 보따리 터지게 싸다가 그 쪽 부모 형제들에게 안겨주는 거 보시지요?
금강산 관광을 위한 모든 시설들을 빼앗고도 마음 편하십니까? 신의와 약속을 팽개치는 당신들 보며 세계 어느 나라가 당신을 상대하겠습니까? 관광객까지 해치는 그 곳에 누가 맘 놓고 가겠습니까? 대한민국은 바보 같아서 그 수모를 당하면서도 똑 부러진 사과 한번 받아내지 못하고 벙어리 냉가슴 앓으며 오늘까지 왔습니다.
어쩌면 당신들이 한국을 만만하게 보는 것도 우리의 책임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엔 애국자가 별로 없고 잇속만 챙기려는 자가 곳곳에 널려있습니다. 젊은이들은 애국심이 뭔지도 모르고 개인주의가 팽배합니다. 사회 곳곳이 허점투성이고 당신들처럼 정신무장이 되어있지 않습니다. 특히 여성들은 사치와 낭비로 붕 떠있습니다. 전력이나 물이나 음식이나 낭비가 일상화 된 나리입니다. 국민이나 국가가 빚더미 안고 사는 데 광고매체들은 끝없는 과소비를 부추기고 있습니다. 병든 사회라고 말해도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사태가 이러한즉 당신들이 조금만 건드리면 와르르 무너져 내릴 법도 합니다. 거기다 대한민국 야당은 당신들의 생각을 대변하듯 사사건건 부정적인 견해를 펼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어찌 보면 암담하고 희망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이상한 일입니다. 이렇게 형편없어 보이는 나라가 G20정상회의를 주도권을 행사하며 성공적으로 개최했고 개발도상국을 돕기 위해 세계로 나가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얻어먹으며 어렵게 살던 나라가 베푸는 나라로 격상 되었습니다. 중국이 뒤따라온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명실상부 세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미국의 대통령이 한국을 배워야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여러 번 했습니다. 세계 각국이 한국의 기술을, 그 발전을 모범 삼겠다고 몰려옵니다.
당신들의 위협이 엄존하고 있기 때문에 외국에서는 한국의 국내정세가 불안한 듯 보이지만 막상 그들이 한국에 와서는 안정되고 질서가 잡혀있어 걱정이 없다고 말합니다. 사실 우리자신도 외국에 나가 돌아다녀 보고서야 대한민국이 얼마나 살기 좋은 나라인지 실감합니다. 기후나 산천이 쾌적함은 물론이고 인심 후하고 정 많고 물자가 넘쳐나는 나라가 대한민국입니다.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이 있지마는 서로 돕고 사는 일, 봉사와 나눔에 팔 걷어 부치는 착하고 훌륭한 사람들이 훨씬 많습니다. 곡간에서 인심난다는 옛말 아시지요? 우리에게 언제 보릿고개 시절이 있었던가 싶게 식재료며 의복이며 가전제품이 전국 곳곳 즐비한 상점들을 가득가득 채우고 있어요. 백화점엔 고가의 상품들로 눈이 부시고 여기가 뉴욕인지 동경인지 구별이 안 되는 고층 빌딩이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습니다. 부산과 거제도를 잇는 거가 대교가 완공 되었다는 소식 알고 있겠지요? 난공사로 불리는 토목 공사가 여기저기서 진척을 보이고 있습니다. 전 국토가 처참하게 짓 밟혔던 6,25의 흔적은 눈 씻고 찾아도 없습니다.
당신들이 그렇게 싫어하는 기독교나 불교신도가 나날이 늘어나서 사랑과 자비와 용서의 정신이 국민 정서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모두가 대한민국의 저력인 셈입니다.
얼마 전에 당신의 나라를 찬양하던 사람을 법으로 용서한 사례가 있었어요. 판결의 이유는 <대한민국 국민은 성숙해서 그만한 선동에 넘어가지 않는다.> 였어요. 이 기가 막힌 선고의 의미를 아실까요? 대한민국은 이제 어느 면으로나 성숙한 나라라고 말해도 괜찮을 정도가 된 것입니다! 물론 도처에 미숙한 구석이 많습니다만. 그러나 진정으로 남쪽 백성들은 북쪽을 불바다로 만들어야한다는 식의 악의를 품고 있지 않습니다!
당신들이 마음을 열고 다가서기만 하면 함께 번영의 길로 가도록 당신들을 도우려는 결의와 열정에 애가 타는 사람들이 다수입니다. 제발 이제 더 이상 미운 짓 그만하시면 안 되겠습니까? 이제까지 지은 죄만으로도 모자라십니까? 지금 한창 혼란한 이집트 사태를 보고 계신지요? 무바라크의 최후가 걱정스럽네요. 이란의 팔레비, 이태리의 뭇소리니, 독일의 히틀러, 이라크의 후세인, 역사속의 친구들이 당신의 꿈속에 찾아와 뭔가 충고 같은 거 하지 않던가요?
우리가 당신들을 다시 적으로 간주하는 것은 끊임없는 당신들의 도발 때문입니다. 그러나 김 위원장님, 대한민국은 당신의 적이 아닙니다. 이 세상 어디에서도 찾을 수없는 당신들의 동지가 될 수 있는 든든한 후원자입니다. 번영과 공존의 길을 외면하지 마시고 부디 함께 잘사는 나라 ,행복이 넘치는 나라가 되십시다. 남쪽 백성 모두의 소원이라 믿습니다.
만수무강을 기원하며 이만 줄입니다.
2011, 신묘년 제주도에서 공옥자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