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事多思] 워킹 맘(mom), 워킹 파파(papa)

2011-01-20     김찬집
요즘 워킹 맘들의 독백(獨白)을 들으면 남자와 똑같은 시간을 일하고 똑같은 시간에 퇴근하지만 아직도 대부분가정에서 집안일과 육아는 여자의 몫이라는 것이다. 새벽에 일어나 아침식사준비를 하고, 아이를 씻기고, 남편의 속옷과 양말을 챙기고,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 회사에 출근해서 회사에서 죽도록 일하고 퇴근해서 다시 아이와 남편을  챙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 뿐인가? 크고 작은 경조사, 가정의 경제를 관리해야하고. 한 달에 일주일은 월경이라는 불청객을 맞아 피로와 우울증으로 참고 견디어야한다는 어려운 형편을 호소한다.
이런 워킹 맘들의 눈물과 고통은 우리시대 새댁들의 삶의 짐인 동시에 희망이다. 이에 같이 사는 워킹파파들도 아내를 슈퍼우먼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자녀와 아내들의 눈칫밥으로 살아가는 가정이 일상다반사라고 한다.
워킹 맘이나, 워킹파파도 집안의 사정에 따라 천차만별 일수 있지만, 태어날 때 하늘이 내린 삶의 짐은  어느 집안이나  있게 마련이다. 하늘은 고통과 삶을 같이 주시기 때문이다. 
요즘 “아빠, 남자하기 힘들지?”라는 광고카피가 한창유행 했었다. 나도 TV채널을 돌리다 그런 광고가 나오면 아내에게 으스대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아내의 반응은 냉정했다. “그래. 남자노릇 하기 어디 쉽나! 당신도 가장(家長)노릇 좀더  잘 합써.” 라는 응답이다.
사실 “워킹파파” 하기  힘 든 게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우리 윗세대들로부터 우리들 세대까지 그야말로 남자하기 힘든 시대를 하루하루 견디며 삶을 지탱해온, 생활전선의 용사인 아버지들이다. 장편소설 “아버지의 오토바이(조두진 작)”에는 ‘가장’이라는 말이 “남자하기”의  힘든 의무를 명예롭게 수행하라는 독려의 채찍임을 밝히는 대목이 있다. 이제 막 아빠가 된 젊은 아들에게 늙은 아버지가 축하인지 겁주기인지 모를 편지를 보낸다. “너도 이제는 아버지가 되었으니 네 손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가리지마라, 그리고 네 손이 하는 수고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지 마라. 네 처자식이 네 평생의 상장(賞狀)임을 잊지 마라.?????”그러나 금년TV CF에서 아들이 “아빠???? 남자하기 힘들지?” 라는 그토록 짧은 말 한마디에 참으로 슬퍼지는 초년생 남편들이 많을 것만 같아서 하는 말이다.  이 카피의 말은 “오늘도 가족을 위해 일하시느라 고생 많으셨죠?”같은 감사의 표현이 아니다. 그보다는 아내의 눈치를 살피며 살아가는 남자들의 현실을 반영한 카피라는 게 더 정확한 분석일 수 있다. 조금 더 생각하면 “ 남자하기”의 역할도 고정불변이아니라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전통적인 가부장 적 남자노릇하기에는  부적절한 시대가 되었다. 가부장적 봉건적남성상은 구닥다리 남자다. 봉건적 남자는  가정이나 사회에 발을 붙일 곳이 없어진지 오래다. 또 워킹 맘들의 주도로 여자들이 너무 세졌다.
요즘 여대생들이 여자대학보다 남녀공학을 선호하는 것도 “남자 하기”힘들어진 시대의 또 다른 풍경이다. 여자끼리 경쟁하면 학점 따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여학생들이 남녀공학으로 몰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반면에 중고등학교 남학생들을 둔 부모들은 내신 성적이 높은 여학생들을 피하기 위해 남자 고교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요즘 공무원, 교사, 사법고시, 행정고시 합격률도 단연 여자가 높다.  여성 합격률이 높은 것은 좋은 것이다.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증가 할 경우 여성들의 섬세하고 부드러움은 밝은 사회에 보탬이 될 것이다. 그러나 남성들의 여성의 눈칫밥을 먹는 세상이 되는 것만 같은 마음을 지울 수 가 없다.
“남자하기”가 위기내지 변화는 2000년대 들어 “탈(脫)가부장적 서정”을 다룬 소설들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이 소설들에서 가장은 더 이상 온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선박의 선장도, 가부장적 권위의 상징도 아니다. 오히려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채 권위만 내세우다 식구들로부터 왕따를 당하거나 한 없이 나약 해져 동정만 사는 남성으로 그려진다. 소설가 김영하의 단편 “오빠가 돌아왔다”에서는 가출했다 돌아온 아들이 가부장적 질서의 상징인 아버지를 집에서 내몬다. 황정은 의 단편“모자”에는 부끄러움을 느낄 때마다 모자로 변해 숨어버리는 아버지를 위로하려 애쓰는 딸들이 등장한다. 남자가 이렇게 만만하고 물러터진 존재로 비치다가는 아예 “남자하기”역할자체가 없어질지도 모른다.
최근 읽은 소설  “아마조네스의 꿈<비버리워커저, 최종수 옮김>에서는 남자 없이 여자만으로 가족을 꾸리는 아마조네스 여인왕국들에 대한 생각이 지워지지 않는다.  이런 작품을 읽는 남자들의 생각은 다양 할 것 같다.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지켜야하는 고단한 삶이 왜 남자들만이 우선이냐 하는 생각에서부터 여자상위시대에 불만을 가지는 남자도 있을 것이다. 어느 경우든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남자하기“가 쉬웠던 시대는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란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