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이들의 사소한 배려
“비행기가 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할머니가 편찮으셔서...” 나의 한마디에 택시는 끼어들기는 기본으로, 엄청난 속도로 제주공항으로 냅다 달렸다. 서귀포에서 출발한 택시는 불과 30분 조금 넘어 국내선 대합실에 도착했다.
서둘러 수속을 끝낸 뒤 좌석에 앉기가 무섭게 비행기는 이륙했다. 할머니가 편찮으시다는 연락을 받고 고향으로 내려가는 길이었다. 그토록 미워했던 광폭 운전 덕분에 마지막 항공편을 놓치지 않는 행운을 누렸다. 얼마 전 일어난 일이다.
나는 그날 이후 운전을 하면서 타인의 끼어들기에 완벽하게 관대해졌다. 조수석의 아내가 놀리든, 동료가 양로원 운전이라고 힐난하든, 누구든 끼어들라치면 나는 곧바로 브레이크를 밟아 공간을 준다. 놀리는 아내에게 무게를 잡고 한마디 한다.
“어린 아기가 몹시 아파 병원으로 향하는 것일 수도 있고, 혹은 저 손님은 첫아이를 낳는다는 아내의 전화에 달려 갈 수도 있을 것이라고. 급히 달리는 거리의 자동차들, 그들마다의 사연이 있을 수 있다.”
나의 설명에 아내는 못 이긴 채 수긍해 준다.
말은 그럴듯하지만 나 스스로 성인군자처럼 타인에 대한 배려 의식을 타고 난 것은 아니다. 끼어들기와 새치기에 분노하고 스트레스를 받은 적이 어디 한두번이겠는가.
그날의 경험은 끼어들기에 관한 한, 나로 하여금 한없이 관대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다. 나는 그동안 많은 순간 타인의 배려를 받고 살아왔을 뿐, 나의 삶은 배려하는 그들에 비해 남루하기 그지없다. 여전히 조그마한 것에도 분노하는, 내공이 부족한 소시민일 뿐이다.
그러나 나는 나만의 경험으로 인해 배려가 인간사회에 얼마나 아름다운 행위인지를 속속들이 체험했다. 공공화장실의 좌변기 덮개가 언제나 올려져 있는 사회, 자신을 희생해 타인의 공간을 배려해 놓은 좁은 공간에서의 주차 등등, 사소한 배려가 우리 사회를 보다 아름답게 한다.
경쟁만이 전부가 아니다. 결국은 남을 배려하는 이타주의자들이 미래의 세상을 이끌어 갈 것이라는 예측이 최근 들어 잇따르고 있다. 오늘날 스마트 폰으로 상징되는 네트워크 사회에서 개인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마치 혼자만 전화기를 가지고 있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타의 중요성을 강조한 예로, ‘디지털 노마드’를 창안한 세계적인 석학 자크 아탈리의 주장이다.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네트워크 사회에서는 타인의 성공이 곧 나에게도 도움이 되고, 타인의 불행이 나에게도 재앙이 된다는 의미다.
그는 이타주의로 무장한 새로운 지식인 집단이 미래의 인류역사를 이끌어 갈 것이라 내다봤다. 맞는 말이다. 가끔씩 경험하는, 모르는, 낯선 사람들이 베푼 배려가 인간사회를 진보시키고 이 늦가을을 따뜻하게 한다.
김종현 서귀포경찰서 정보보안과 정보관